[부부 리모델링]<1>역할의 재구성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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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선현경
그림 선현경
《우리 부부는 잘 살고 있는가. 결혼했다고 모든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부부 다섯 쌍 중 한 쌍만이 행복한 부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관계도 잘 살피고 고치고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생활 리모델링’을 제안한다.》

#1. 맞벌이 부부, 집안일은 ‘함께’

한 중견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들려준 이야기.

어느 날 늦게 퇴근해 집으로 들어가니 아내가 시아버지 생신 선물로 뭘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알아서 하라는 말 한마디만 던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그 일로 고민 했을 텐데 아들인 내가 마치 남의 일처럼 무관심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며느리의 역할만을 요구한 것 같아 며칠 동안 눈치를 살피며 지내야 했지요.”

가족 내 역할 문제는 부부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가 가사 분담이다. 남편들은 바깥일만 잘하면 남자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맞벌이가 증가하면서 가사분담이 이뤄지고 있지만 생각의 저변에는 항상 ‘함께’가 아닌 ‘도와준다’는 의식이 깔려 있어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박모(42·회사원·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씨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기저귀 한번 갈아준 적이 없는 간 큰 남편이었다.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가기가 다반사였던 그는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내가 허리가 아프고 발목이 쑤신다고 고통을 호소하면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심한 날은 걸음도 못 걸을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주말에 청소 빨래 식사준비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제 일로 생각하고 직접 하려고 했어요.”

그는 아내가 제발 오래 함께 살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큰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다.

오랫동안 사귀다 의사와 결혼한 주부 전영혜(가명·45·서울 서초구 서초동) 씨는 ‘포기’를 통해 삶의 평화를 찾았다. 전 씨는 아이가 생긴 다음에도 계속되는 남편의 무관심 때문에 우울증까지 겪었다.

“도와 달라”고 하면 남편은 “당신이 나와서 병원 일 할래. 마찬가지 아냐” 하고 응수했다.

전 씨는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이웃집 아이들이 감기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달랬다고 한다. ‘전업주부도 직업이다. 집안일에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10여 년간 맞벌이로 지내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전업주부가 된 이영은(가명·38·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씨는 아들의 이야기에 남편이 완전히 변했다고 전했다.

아이는 교과서에 나온 부모의 역할 부분을 짚으면서 ‘왜 아빠는 집안일을 하지 않느냐’ ‘책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 씨는 자신이 말할 때는 부엌에 얼씬도 않던 남편이 주말이면 브런치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고 했다.

#2.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면

단점을 장점으로 보려는 노력으로 위기를 넘긴 부부도 있다.

결혼한 지 14년 된 주부 김지혜(가명·42·서울 동작구 사당동) 씨는 상담을 통해 집안일에 무관심한 남편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상담 내용 중 배우자 장점을 30가지 적는 시간이 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장점으로 칸을 메울 수 없었다는 김 씨는 남편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김 씨는 ‘아이를 돌보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해 줘서 고맙다’ ‘당신이 매일 늦게 귀가해 아이들과 함께 지낼 시간들이 많았다’고 적어 내려갔다.

“배우자 사인을 받아 오라고 해서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충격을 많이 받는 눈치였어요.”

목동가족치료연구소 이남옥(45) 소장은 부부역할 갈등 해결을 위한 첫 단계로 부부가 함께 ‘관계통장’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다.

‘관계통장’은 가계부와 같은 것으로 자신의 행동이 배우자를 위한 것이면 입금으로, 반대의 것은 출금으로 처리해 둘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기록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갖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의 저자 전경일(43) 씨는 “아내가 슈퍼우먼이 되기를 원하거나 남편이 슈퍼맨이 되기를 바라지 말라”며 “부부는 ‘가정의 공동경영자’라는 사고 전환이 이뤄져야 가정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선임 사외기자 sunnyksi@yahoo.co.kr

■‘맞벌이 부부’ 서로 이해하는 방법 7가지

1.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아라

2. 배우자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라

3. 직장 얘기를 들어줘라

4. 성(性)을 폄훼하는 얘기는 아무리 부부간이라도 삼가라

5. 서로의 기대치를 올리지 마라

6. 상대에 대한 격려는 돈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7. 맞벌이를 내세우지도 감추지도 마라

자료: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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