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장환수의 數포츠]선동열은 최동원에게 왜 고개를 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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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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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타계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오른쪽)과 선동열 KIA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였다. 2006년 올스타전 식전행사로 열린 25년 올스타와 연예인야구단의 경기에 참가한 두 사람이 활짝 웃으며 담소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달 타계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오른쪽)과 선동열 KIA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였다. 2006년 올스타전 식전행사로 열린 25년 올스타와 연예인야구단의 경기에 참가한 두 사람이 활짝 웃으며 담소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달 야구계는 큰 별을 한꺼번에 둘이나 잃었다. 1주일 간격으로 장효조와 최동원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많이 받은 질문 하나. “장효조 때는 기사가 별로 없더니 최동원이 사망하니 하루에 몇 개씩 며칠에 걸쳐 시리즈로 쏟아지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둘의 기록을 살펴보자. 장효조는 프로 10년 동안 3년 연속을 포함해 4번이나 수위타자에 올랐다. 그를 제외하곤 여태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그의 통산 타율은 0.331이다. 웬만한 타자들은 3할을 한 번이라도 쳐보는 게 꿈이겠지만 장효조는 매 시즌 3할3푼이 안 되면 슬럼프였다는 얘기다. 18년간 유니폼을 입은 양준혁이 통산 타격 기록 대부분을 갖고 있지만 타율에서만큼은 상대가 안 된다. 이 부문 2위인 양준혁은 0.316으로 장효조와는 1푼5리나 차이가 난다.

▷반면 8시즌을 뛴 최동원은 1984년 여태 깨지지 않은 한 시즌 최다 탈삼진(223개) 기록을 세웠지만 통산 기록에서 1위는 하나도 없다. 평균자책은 2.46으로 눈이 부셔도 2위다. 선동열이 있기 때문이다. 3시즌이나 0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한 선동열은 1.20으로 최동원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럼에도 선동열은 빈소에서 “최동원 선배는 나의 우상이었다.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자신을 낮췄다. 팬들도, 야구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최동원만큼은 ‘국보(國寶)’로 불리는 선동열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

▷장효조는 타격 1인자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정교함에서일 뿐이다. 홈런왕 이승엽을 옆에 놓고 보면 아무래도 빛이 덜하다. 타격왕은 벤츠를 타지만 홈런왕은 캐딜락을 탄다는 옛 말도 있지 않은가. 이에 비해 최동원은 기록상으로는 분명 투수 중에서도 2인자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투수와 타자를 합친 전체 랭킹에서 1인자의 대우를 받는다. 이게 두 스타의 사후 언론 보도에 큰 차이가 난 이유다.

▷그렇다면 선수의 능력을 판정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최동원이 장효조보다 낫다는 걸까.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도 모르겠다. 야구가 생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수식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시상하는 투수 6개 부문, 타자 8개 부문의 개인 타이틀이 있긴 하다. 올해 KIA 윤석민은 다승 평균자책 탈삼진 승률 등 선발투수가 차지할 수 있는 4개 부문에서 전관왕에 올랐다. 1989∼1991년에 3시즌 연속 달성한 선동열에 이어 20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지난해 롯데 이대호는 도루를 제외하고 타율 홈런 타점 득점 안타 장타력 출루율 등 방망이로 이룰 수 있는 7개 부문에서 전인미답의 전관왕이 됐다. 이쯤 되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올해 최고 투수는 윤석민, 지난해 최고 타자는 이대호다.

▷하지만 타이틀은 각 부문을 나눠가지는 경우가 더 많다. 역대 한국 최고 투수는 누구인가의 해묵은 논쟁도 비슷한 경우다. 선동열은 개인 타이틀 중 투수의 객관적 능력이 가장 잘 반영된다는 평가를 받는 평균자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동원은 완투와 연투 능력, 승부처에서의 대담함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1984년 정규 시즌 27승에 이어 세계 야구 역사상 유례가 없는 한국시리즈 4승은 바로 이런 능력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 때문에 어떤 감독은 전성기만 놓고 둘 중 하나만 택하라면 무조건 최동원을 고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사실 두 최고 투수를 비교하는데 고려해야 할 사항은 수없이 많다. 둘은 동시에 야구를 했지만 최동원이 나이는 다섯 살이 많고, 학번은 3년 빠르다. 당시 우승을 밥 먹듯 했던 해태와 정규시즌에서 최고 승률을 거둔 적이 한 번도 없는 롯데의 전력도 큰 차이가 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둘의 맞대결만 놓고 보면 1승 1무 1패로 호각을 이뤘다.

▷장명부(1950∼2005)와 박철순도 짧은 기간 불꽃을 태웠지만 최고 투수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장명부는 1983년 30승(16패)을 거뒀다. 삼미의 그 해 전체 승수인 52승(47패 1무)의 57.7%다. 팀당 100경기를 하던 시절 60경기에 등판했고 이중 선발이 44경기였다. 36경기를 완투해 8경기 연속을 포함해 완투승만 26승이나 됐다. 규정 이닝의 4배가 넘는 427과 3분의 1이닝을 던졌다. 최동원보다도 여덟 살이 많은 그의 당시 나이는 33세였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었다. 박철순은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지만 프로 원년인 1982년 단일 시즌 22연승의 세계기록을 세웠다. 혼자 다 던지는 투수와 패배를 모르는 투수. 감독 입장에선 선동열 최동원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한화 류현진은 선발 투수가 6이닝 이상을 던져 3자책점 이하로 막은 경기를 뜻하는 퀄리티 스타트에서 29경기 연속 세계기록을 세웠다. 이제 한 투수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영웅들의 시대는 끝났다. 선발-중간-마무리의 마운드 분업화가 이뤄진 현대 야구에서 투수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인 퀄리티 스타트는 미국에서도 1986년에야 거론되기 시작한 기록이다. 그런 점에서 류현진도 충분히 최고 투수 후보라 할 만하다.

▷타격에선 OPS(출루율+장타력)가 신선해 보인다. 누가 누상에 자주 나갔고, 동시에 장타를 많이 쳤느냐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재미있는 것은 2003년 56홈런을 친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보다 심정수(53홈런)의 OPS가 훨씬 높다는 점이다. 당시 심정수는 출루율 0.478에 장타력 0.720으로 모두 1위에 올라 OPS 1.198을 기록해 이승엽(1.127)을 압도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통산 타율은 타이 콥이 0.367로 최고이지만 OPS는 타율 8위(0.342)인 베이브 루스가 1.164로 테드 윌리엄스(1.115) 등을 크게 앞선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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