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어시스트]‘모벤져스’서 조연시대로 바뀐 현대모비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8일 1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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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 이대성 이종현 줄부상
-흔들리는 절대 1강 체제
-박경상 서명진 배수용 등 잇몸 활약

27일 SK를 극적으로 꺾고 기뻐하는 박경상 라건아 함지훈 등 현대모비스 선수. <KBL  제공>
27일 SK를 극적으로 꺾고 기뻐하는 박경상 라건아 함지훈 등 현대모비스 선수. <KBL 제공>
프로농구 시즌 초반 현대모비스는 슈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한 영화 ‘어벤져스’에 빗댄 ‘모벤져스’로 불렸다. 호화멤버를 앞세운 절대 1강‘으로 고공비행했기 때문이다. 팀 평균 득점이 한때 100점을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모벤져스 주역으로 소개된 6명 가운데 라건아, 함지훈, 문태종을 제외한 절반이 현재 팀 전력에서 이탈했다. 양동근, 이종현, 이대성이 부상으로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양동근은 발목을 다쳤고, 이대성은 햄스트링이 좋지 않다. 이종현은 슬개건 파열로 시즌 아웃됐다.

양동근(6억5000만 원) 이종현(1억8000만 원), 이대성(1억 원)은 팀 전체 연봉 합계(샐러리)의 39.24%를 차지한다. 이들 없이 경기를 치르는 건 장기로 치면 ’차‘ ’포‘ ’마‘ 없이 두는 거나 다름없다.

영화 어벤져스를 패러디해 만든 모벤져스 포스터. <현대모비스 제공>
영화 어벤져스를 패러디해 만든 모벤져스 포스터. <현대모비스 제공>
거듭된 악재 속에서 27일 SK와의 방문경기를 앞두고 만난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은 “20년 넘게 감독하면서 이렇게 부상자가 쏟아지지는 건 처음이다. 초반에 벌어둔 (승수) 덕분에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현대모비스는 연장 끝에 2위 전자랜드에 패배를 당한 후유증도 있었다.

이날 최하위 SK를 맞아 선두 현대모비스는 17번 동점을 거듭하는 접전 끝에 86-85로 이겼다. 8할이 넘던 승률 보다는 못하지만 부상 병동이 된 새해 들어 현대모비스는 6승 3패(승률 0.667)로 2위 전자랜드와의 승차를 4.5경기로 유지하고 있다.

주전 선수 이탈 속에서도 현대모비스가 버틸 수 있는 건 ’헐크 센터‘ 라건아가 골밑을 확실하게 지켜주는 가운데 평소 출전 기회가 적던 ’잇몸‘들이 제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양동근과 이대성의 공백은 박경상과 고졸 루키 서명진이 맡고 있다. 골밑에선 배수용과 김동량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고교 3년 신분으로 지명받은 서명진은 과감한 패스와 3점슛으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유재학 감독은 어린 나이에 하려는 의지를 감안해 서명진이 설사 실수가 나와도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평소 벤치에 앉아있던 시간이 많았던 이들 조연들은 출전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코트에 선 순간 압박 수비와 팀플레이로 투지를 발휘하고 있다. 식스맨이나 후보 신분이지만 늘 출격 명력만을 기다리며 묵묵히 땀을 흘리지 않았다면 발휘하기 힘든 모습이다.

박경상은 “동근형이나 대성이가 빠지다 보니 리딩이나 볼을 운반할 선수가 없기 때문에 리딩 부분에 많이 쓰려고 한다. 원래 보조 역할을 하다 전면에 나서다 보니 어려움도 있는데 동료들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즌아웃된 이종현 빈 자리를 채우고 있는 배수용. <KBL 제공>
시즌아웃된 이종현 빈 자리를 채우고 있는 배수용. <KBL 제공>
27일 SK전에서 7리바운드를 기록한 배수용은 “종현이가 빠져 팀 높이나 수비가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내가 엄청나게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 보다는 리바운드나 궂은일에서 보탬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배수용은 또 “공격적인 부분엔 아쉬움이 많다. 감독님께서도 기회가 오면 안 들어가더라도 던지라고 말씀하시는 데 막상 경기에 나가면 마음대로 안된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함지훈(35)과 문태종(44)은 체력 부담으로 전성기에서는 벗어났지만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비마다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부상중인 양동근도 수시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즌 초반 스타 군단을 앞세운 화려한 공격농구를 펼치던 현대모비스는 최근 팀컬러를 과거와 같은 ’짠물 수비 농구‘로 다시 바꿨다. 기용할 수 있는 선수 폭이 줄어든 만큼 수비를 강화하고 공격은 확률 높은 세트 오펜스 위주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무리한 공격을 펼치다 턴오버가 나올 경우 상대에게 손쉬운 속공이나 오픈 3점슛 기회를 헌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현대모비스 고졸 루키 서명진. <KBL 제공>
현대모비스 고졸 루키 서명진. <KBL 제공>
이번 시즌 현대모비스의 발목을 잡던 턴오버도 줄었다. 현대모비스는 28일 현재 경기당 평균 13.6개의 턴오버(실책)로 이 부문 1위다. 새해 들어 치른 9경기에선 턴오버가 11.8개(4위)로 줄었다. 시즌 개막 후 12월 31일까지 턴오버는 14.2개에 이른다.

미국대학농구에서 전설적인 명장으로 꼽히는 밥 나이트는 “승리의 여신은 실수를 가장 적게 하는 팀을 총애한다”는 말을 남겼다. 턴오버 때문에 골치를 썩었던 유재학 감독은 조연들의 성장과 함께 줄어든 실책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양동근과 이대성은 1주 후부터는 출전이 가능할 전망이다. 당분간 잇몸들이 얼마나 버티느냐에 현대모비스의 설 연휴 분위기가 좌우될 것 같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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