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매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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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로 물건을 받는 일이 잦다. 대부분은 사무적인 일이지만 가끔은 정이 듬뿍 담긴 상자를 받기도 한다. 시골에서 참기름을 짰다, 갓김치를 담갔다, 땅콩이 정말 고소하니 먹어보라며 요거조거 골고루 넣은 상자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국물이 샐까, 병이 깨질세라 염려하여 얼마나 단단히 포장하고 묶었는지 칼과 가위로 싹둑거리고 난도질을 하는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 할 경우가 있다.

고마운 마음이야 이를 데가 없지만 포장을 뜯느라 한참 진땀을 빼고 나면 ‘뭘 이렇게까지 칭칭 동여맸을까’ 생각했는데 장흥진 시인의 ‘매듭’이란 시를 읽으며 숙연해졌다.

시인도 어머니가 보낸 택배를 받는다. 칭칭 동여맨 상자를 보며 난감해하자 시인의 아이가 칼을 건넨다. 상자 속엔 가을걷이한 곡식과 채소가 들어 있을 터. 하나라도 더 보내려다 보니 상자가 닫히지 않자 어머니는 꾹꾹 눌러가며 가로세로 수십 번 비닐 끈으로 동여매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뭉툭한 손이 떠올라 시인은 차마 단칼에 잘라내지 못한다.

‘힘이 들수록 오래 기도하시던 어머니처럼/무릎을 꿇고/밤이 이슥해지도록 상자의 매듭과 대결한다/이는 어쩌면 굽이진 어머니의 길로 들어가/아득히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인도 어렸을 적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지름길을 지향하는 칼’을 버리고 차근차근 어머니의 매듭을 풀어내면서 이음매 없이 길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길을 본다고 썼다. 나는 이 대목에서 비로소 딸이 어머니를 이해하고 일치가 되는 감동을 느꼈다.

지난 일요일에는 봄맞이 겸사겸사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 나도 예전에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단칼에 베어내지 못하는 속 좋은 엄마가 못마땅해서 “그러면 남들이 우습게 본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냅둬라. 괜찮다”라면서 빙그레 웃고 말아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 버전으로 가고 있는 나를 본다. 나도 딸에게 “괜찮아. 돌아서 가도 결국은 다 도착하게 되어 있어”라는 당치 않은(?) 말을 한다. 세상의 매듭을 푸는 방법이 칼로 싹둑 자르는 것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다 보면 비로소 보이는 길이 있다. 진정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풀리지 않을 매듭이 어디 있을까.

윤세영 수필가
#매듭#지름길을 지향하는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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