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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챙기기, 온전한 보듬기의 시작[광화문에서/손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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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챙기기, 온전한 보듬기의 시작[광화문에서/손효림]

손효림 문화부 차장 입력 2019-07-04 03:00수정 2019-07-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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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난 더 이상 앤디만의 장난감이 아니야.”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서며 인기몰이 중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4’에서 도자기 인형 보핍은 말한다. 주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다른 장난감들과 달리 선택받길 기다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보핍은 확실히 눈에 띄는 캐릭터다. “장난감의 사명은 끝까지 아이 곁을 지켜주는 거야”라는 보안관 인형 우디의 말에 보핍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러진 팔을 테이프로 직접 붙이고 문제를 씩씩하게 척척 해결하는 보핍은 ‘캡틴 마블’, ‘엑스맨: 다크 피닉스’, ‘걸캅스’ 등 최근 영화계의 대세인 ‘걸크러시’를 반영한다.

보핍을 가만히 살펴보면 단순히 영웅적인 면모만 지닌 게 아니라 스스로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길 원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우디와 다른 장난감들을 돕는다.

베스트셀러 ‘당신이 옳다’의 저자인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한 다음에야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단다. 단, 부정적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옳지 않다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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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면서 나만 위하는 이기심과는 다르다. 나부터 챙겨야 다른 이도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 관계, 사회적 위치에 얽매여 자신의 감정을 살피지 못한 채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는 ‘감정 노동’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분노와 좌절, 공허함만 남는다. 정 전문의는 “자기 보호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가 힘들어 보인다고 개입하는 것은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뛰어드는 것과 같다. 둘 다 불행해진다”고 조언한다.

가녀린 몸에 멋스러운 은발이 돋보이는 배우 예수정 씨(64)는 40년간 연극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비결로 관객과 일정 거리를 둔 것을 꼽았다. 그는 “관객들의 기대에 짓눌려 상처받지 않도록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내 길을 가려 애쓰다 보니 정신적으로 건강해진 것 같다. 내가 삶에 대해 공부하는 방법이 연극인데, 공부하면서 밥벌이도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시원스레 웃었다. 자신을 지키며 원하는 길을 찾아 꾸준히 걸어온 그는 명품 연기라는 그만의 방법으로 관객을 위무한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진짜 나로 사는 방법을 담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를 비롯해 나를 우선순위에 두라고 말하는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같은 책이 독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건 스스로를 챙기지 못해 힘들어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의미한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강하게 의식하는 우리 사회 특유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른 이를 온전하게 보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편안해지고 괜찮아야 한다. 보핍이 그토록 용감할 수 있었던 건 튼튼한 내면이 존재하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토이 스토리4#당신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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