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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전쟁, 정부가 뛰어들어라[동아광장/하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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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전쟁, 정부가 뛰어들어라[동아광장/하준경]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입력 2019-09-02 03:00수정 2019-09-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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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선진국 추격 성공한 美-英… 정부의 제도-자본 지원이 결정적
최근 AI 분야도 각국 경쟁 심화… 시장-기업에만 맡겨선 한계 봉착
어려운 과제 중심으로 정부 나서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산업혁명 초기 미국은 영국에 면화를 공급하던 식민지였다. 그러나 미국은 독립 이후 영국의 첨단 기술을 따라잡으려 국가적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 젊은이 새뮤얼 슬레이터는 이때 최신 방적기 설계도를 암기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영국인들에겐 반역자로 불렸지만 미국에선 ‘산업혁명의 아버지’가 됐다. 18세기 말 미국은 영국의 지식재산권을 지켜주는 데 관심이 없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국가 간의 자유로운 거래 대신 보호관세, 핵심 원자재 수출 금지, 발명에 대한 보상·특허, 보조금, 정부 투자·보증 등 각종 산업진흥정책을 추진했다.

영국도 16, 17세기에 비슷한 일들을 했다. 영국은 벨기에, 네덜란드에 양털을 팔고, 이들이 만든 모직물을 수입하는 국제 분업 체계에 속해 있었다. 영국은 불리한 위치에서 벗어나려고 보호관세, 고급 원자재 수출 금지, 보조금 지급, 기술인력 빼오기 등의 정책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시도는 영국 모직물 산업이 클 때까지 계속됐다.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841년에 “영국인들이 만약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뒀다면 영국은 아직도 벨기에를 위한 양떼목장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산업 국가들은 자국 기술 수준을 높이려고 음으로 양으로 전략적 정부 개입을 적극 활용해왔다. 기술 수준이 국제 분업에서 자국의 위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술선도국은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과는 선도국 클럽을 만들어 수평적 관계에서 분업을 추구하지만 격차가 큰 나라들과는 수직적 분업, 즉 일종의 상하관계를 추구한다. 선도국은 자국의 지위가 확고할 땐 이 질서를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이름으로 심화시킨다.

그러나 선도국과 추격국 사이의 경합이 심해지면 정부들이 전면에 나선다. 특히 새 기술이 출현해 기존 분업 질서가 흔들릴 땐 더 그렇다. 면직물 산업에서 화학, 전기 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 분업 질서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국가의 부침이 일어난다. 영국은 1차 산업혁명, 미국은 2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타고 선도국이 됐다. 선도국은 기술 혁신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추격국은 변화 과정에서 기회의 창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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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상하는 인공지능 기술도 질서를 흔들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가능성에 가장 선제적으로 대처해 온 나라는 미국이다. 인공지능 특허의 양과 질 모두에서 압도적이다. 일본, 캐나다, 영국, 독일, 한국 등이 뒤따르고 중국이 엄청난 국가적 자원을 투입하며 달려온다.

사실 미국 첨단 기술의 상당 부분은 정부 투자에서 비롯됐다. 인터넷,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이 미 국방부 연구개발에서 시작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미국 정부 자금으로 만든 특허의 양과 질은 웬만한 선진국 몇 개의 기업과 정부를 합친 것보다 낫다. 미국은 지난해 정부 연구개발 예산으로 158조 원을 썼고, 독일과 일본은 각각 44조 원, 41조 원을 썼다. 한국은 20조 원을 썼는데 내년 예산안에선 이를 24조 원으로 늘린다고 한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려면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 또 지금 한국은 기술 선도국 클럽에 진입해 선진국들과 수평적 관계를 갖는 길로 가야 함을 잊어서도 안 된다. 적어도 몇몇 첨단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 기술들을 확보해야 누구든 한국을 흔들면 자신도 흔들린다는 인식이 생겨난다. 당장 특정 국가 의존성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술 수준의 비대칭성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 지원 연구개발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이행해 가야 한다. 특히 시장이 다루기 어려운 고위험의 창의적 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선도자와 추격자는 질적으로 다르다. 깜깜한 밤길에 추격자는 앞차의 불빛을 보고 달리지만 선도자는 불확실성 속에서 새 길을 개척한다. 정부 연구개발 성공률이 90%가 넘는다는 것은 선도형이 아님을 의미한다. 미국의 중소기업혁신연구 지원프로그램(SBIR)은 성공률이 절반이 안 된다. 성공률에 연연하지 말고 쉬운 과제보다는 불확실하지만 창의적인 과제를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실패와 시행착오로 얻은 경험을 자산화해 축적하고 사람을 키우는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전략적 접근이 절실하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인공지능#ai#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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