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파간첩[횡설수설/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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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암살조로 남파된 김명호, 동명관은 10대 후반인 1992년 9월 정찰총국 공작원으로 선발됐다. 남한의 발음과 억양을 내기 위해 TV 드라마와 영화를 수도 없이 봤다. 17년이 흐른 2009년 11월 정찰총국장 김영철이 둘을 호출했다. “황가(황장엽)의 친척으로 위장해 남조선에 침투하여 없애라.”

이듬해 이들은 다른 탈북자들에 섞여서 남한에 들어왔다. 하지만 일반 탈북자와 확연히 다른 건장한 체격이 발목을 잡았다. 북한이 내려보낸 황장엽 암살조는 두 팀이 더 있었다.

▷1995년 10월 체포된 직파간첩 김동식의 외모는 곱상했다. 선발 당시 출신 성분은 물론이고 학업 성적과 용모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동식에게 ‘신세대 공작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곱상하지 않았다. 1990년 대남공작을 총지휘하던 간첩 이선실의 동반 월북에 성공한 공로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5년 뒤 2차 침투 때 접선 대상이 노출되면서 우리 군경과 총격전까지 벌였고, 총상을 입은 채 체포됐다.

▷북한 정찰총국이 직접 보낸 직파간첩이 최근 검거됐다는 소식이다. 요즘도 남파간첩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암약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직파간첩의 임무는 ‘원 포인트’ 공작이 많다. 대개 요인(要人)을 포섭하거나 제거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간혹 남한에서 암약하는 고정간첩과 포섭된 인사들의 활동을 점검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도 은밀한 임무 수행을 위해선 이런 대면 공작이 필요한 모양이다.

▷정찰총국은 1만여 명의 자체 병력을 보유한 북한 공작기관의 핵심으로 6개 국(局)을 두고 있다. 1국에선 직파간첩 양성을 위한 지옥훈련과 폭약·독침 교육을 시키고, 남파 공작원들을 수송하는 운반조 역할도 한다. 정찰총국 이외에 국가보위성과 군 보위사령부, 문화교류국(옛 대외연락부)도 직파간첩을 운용한다. 특히 문화교류국은 명칭만 그럴 뿐 냉혹한 공작기관이다. 1997년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의 암살 배후로 지목됐고, 김동식도 여기서 남파 지령을 받았다.

▷이번에 검거된 40대 간첩은 스님 행세를 하며 활동했다고 한다. 국적을 세탁할 때도 불교문화가 강한 국가를 선택했다. 과거 직파간첩들이 이용했던 탈북자 루트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자 새 경로를 개발한 것으로 공안당국은 보고 있다. 평화 무드도 좋지만 냉엄한 남북관계, 변하지 않는 북한 정권의 속성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간첩#직파간첩#정찰총국#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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