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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9년 국민학교 운동회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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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9년 국민학교 운동회 의무화

입력 2009-03-24 03:05수정 2009-09-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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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가을 한 시골 국민학교(초등학교).

해맑은 가을햇살이 내리쬐는 아침부터 운동장에는 오색찬란한 만국기가 펄럭였다. 가을운동회가 열리는 운동장에서 행진곡이 신나게 울려 퍼졌다. 전교 학생이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100m 달리기를 했다. 조그만 운동장을 앞 다퉈 뛰다가 넘어지는 학생도 있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응원 소리가 드높다. ‘비가 오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학생이 많은 도시 학교에서는 청군과 백군뿐 아니라 홍군도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여학생들의 매스게임과 고학년 남학생들의 텀블링은 국민학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였다. 4층 ‘인간 탑’을 만드는 텀블링을 위해 학생들은 한 달 전부터 방과 후 학교에 남아 강도 높은 연습을 해야만 했다. 철저한 협동을 통해서만 묘기를 연출할 수 있는 위험한 운동이어서 체육선생님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산만한 학생들은 매를 맞기도 했다. 3, 4명이 한 조가 돼 만들어내는 ‘돛단배’와 10여 명이 4층 인간 탑을 이룰 때면 학부모들의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운동회는 학부모도 함께 나와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면서 마무리됐다. 운동회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헤어질 줄 몰랐다. 삼삼오오 모여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갖가지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 학교에 모여 들어 시골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골 국민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의 잔칫날이었다. 넉넉지 않은 시절 1970년대 가을운동회에는 훈훈한 인심과 정이 흘렀다.

문교부는 1975년 국민학교 운동회를 일절 열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도시를 중심으로 운동회 경비를 학부모들로부터 조달하는 학교가 적지 않은 데다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계각층에서 운동회 부활 목소리가 높아지자 문교부는 이후 운동회를 권장 사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잡음을 우려한 도시 학교에선 운동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운동회가 유명무실해지자 1979년 3월 24일 서울시교육위원회는 시내 273개 국민학교에 학교당 30만 원을 운동회보조금으로 내려 보내 운동회를 의무적으로 열도록 했다. 단, 반드시 학교 운동장을 사용하도록 하되 운동장이 좁을 경우 학교장 재량으로 2, 3개 학년 단위로 나눠 3일 동안 여는 방안을 내놓았다. 운동회 경비는 30만 원의 운동회보조금으로 충당하되 모자랄 경우 육성회비 중 학생복지비를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학부모들에게는 일절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지금도 초등학교마다 운동회가 열리지만 예전처럼 흥미진진한 텀블링과 매스게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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