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은 지금] “부시, 폭주족이 아닙니다”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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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대의 모터사이클이 줄을 지어 굉음을 내면서 워싱턴을 향해 달린다. 검은 헬멧과 가죽조끼, 긴 장화…. 폭주족으로 여기기 쉽지만 대부분 헬멧 아래에 은발이 나부낀다. 운전자의 허리를 꼭 안은 뒷자리의 여성도 핫팬츠 차림의 10대가 아니라 중년 여성이 많다. 속도도 일반 차량보다 빠르지 않다. 성조기가 꽂혀 있는 오토바이도 많다.

해마다 미국의 메모리얼데이(현충일)가 되면 워싱턴 일대 고속도로에서 목격되는 진풍경이다. 메모리얼데이를 하루 앞둔 27일 미 전역에서 달려온 수만 대의 모터사이클이 워싱턴에 모였다. 국방부(펜타곤) 청사 앞에 집결한 뒤 대오를 맞춰 포토맥 강을 건너 베트남전쟁 및 6·25전쟁 참전 기념탑 앞으로 행진한다. 그리곤 기념탑에 꽃다발과 추모의 글이 적힌 노트를 놓고 고개를 숙인다.

미국에선 이들을 ‘롤링선더’라 부른다. 참전용사와 은퇴 군인, 가족들이 전쟁포로(POW) 및 실종자(MIA), 참전용사들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1987년부터 메모리얼데이가 되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워싱턴 순례를 시작했다.

이날 롤링선더의 창립자인 아티 멀러 씨 등이 탄 8대의 모터사이클은 백악관 앞에 멈췄다. 남쪽 현관에 나와 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멀러 씨 부부를 비롯한 13명의 라이더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이들 13명 가운데는 롤링선더로 변신해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온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 더크 켐프손 내무장관, 메리 피터스 교통장관 등도 끼여 있었다.

35분간의 대통령 면담이 끝난 뒤 멀러 씨는 미국 언론들에 “2004년에 이어 부시 대통령을 두 번째 만났는데 그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줬고 진지한 공감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행사장 주변으로 진입하는 일반 차량을 모두 차단해 줬다. 교통법규 위반 적발 모터사이클은 1건이었고, 메릴랜드 주에서 1건의 경미한 교통사고가 있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워싱턴 시민들 가운데 휴일 교통체증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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