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 기자의 여의도 X파일]새해엔 ‘매도 보고서’도 보고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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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초반부터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합니다. 당초 예상했던 10조 원에 한참 못 미치는 8조 원대의 실적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주가도 최근 2주간 143만3000원(지난해 12월 23일)에서 6일 130만7000원까지 8.8%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올해 초 나온 증권사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팔 것을 권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수십 건을 들춰봤지만 ‘매도’를 권유하거나 ‘투자를 보류’하라는 보고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매수’를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부진한 실적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에” “작년엔 실적이 나빴지만 올해는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해 수익성을 최대한 관리했기 때문에” “주가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고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는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최근 주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인은 “허구한 날 매수만 추천할 거면 뭐 하러 고생해 가며 실적을 분석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업 IR 담당자나 해당 종목을 많이 사들인 펀드매니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고충은 있습니다.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낸 후 해당 종목의 주가가 떨어지면 IR 담당자나 펀드매니저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식의 협박이나 욕설을 듣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전합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증시 변동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정확한 매도 타이밍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그 보고서를 믿고 귀중한 돈을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투자자들이 순매수한 종목 상위 25개 중 연말에 주가가 올라 수익을 안겨 준 종목은 단 1개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손실이 쌓이면 개인투자자들은 어느 순간 자본시장 투자를 포기하고 모든 자금을 뺄 것입니다. 거래 대금이 많아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증권사의 어려움도 그만큼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증시 속에서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등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올 한 해는 투자자들에게 진정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신 있는 의견이 담긴 보고서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삼성전자#증권가#증시 변동#매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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