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힌 북한의 ‘도발 볼레로’가 또 시작됐다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9일 14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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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북한이 4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발사 시험을 했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다시 재개된 무력시위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은데요,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다시 과거 무력대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인지, 단지 방공능력을 시험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

A. 지난달 22일 우아한을 통해 북한의 ‘소극적인 도발’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관련기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기 좋게 협상 결렬을 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의 판을 깨지는 않으면서도 불만을 표시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실제 발사 실험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북한의 살라미(도발이나 대화의 수단을 조금씩 끊어서 시간을 끌며 내놓는 것) 전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4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흰 연기를 뿜으며 날아가는 순간을 포착한 위성사진을 미국 CNN이 5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CNN에 이 사진을 제공한 미국 싱크탱크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발사 지점, 두껍고 연기가 자욱한 배기가스, 1개만 있는 로켓 흔적 등을 볼 때 단거리 탄도미사일(short-range 
ballistic missile)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제공·CNN 홈페이지 캡처
4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흰 연기를 뿜으며 날아가는 순간을 포착한 위성사진을 미국 CNN이 5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CNN에 이 사진을 제공한 미국 싱크탱크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발사 지점, 두껍고 연기가 자욱한 배기가스, 1개만 있는 로켓 흔적 등을 볼 때 단거리 탄도미사일(short-range ballistic missile)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제공·CNN 홈페이지 캡처


8일 저녁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규탄 성명을 보면 이번 사건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대변인은 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내놓은 주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입니다.

①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응당한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우리는 이를 애써 참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대한 전략적 결단을 요구하는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한데 대하여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당한 상응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아 6.12조미공동성명 리행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②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의 합의를 무시하고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월과 4월에만도 남조선에서는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동맹19-1》과 련합공중훈련이 진행되였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를 겨냥한 전쟁연습계획들이 끊임없이 작성되고 있다.”

③ 이런 가운데 우리도 ‘전술 유도 무기’ 능력 시험을 하는 자위적 군사훈련을 단행하였고 이는 한국 등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 우리 군대가 진행한 훈련은 그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닌 정상적인 군사훈련의 일환으로서 지역정세를 격화시킨 것도 없다. 어느 나라나 국가방위를 위한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서 일부 나라들이 다른 주권국가를 겨냥하여 진행하는 전쟁연습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대변인은 이런 논거를 토대로 한국과 미국 등이 자위적 군사훈련을 도발이라 비난하고 있다며 “대단히 불쾌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경종을 울린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과 국제사회에서는 군이 ‘발사체’라고 표현한 것이 과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금지된 탄도미사일인지 아닌지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대변인은 문답에서 “방사포와 전술 유도 무기”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한미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발사체는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북한형으로 보입니다.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이 상원 청문회에서 “미사일과 로켓”이라는 표현을 한 가운데 우리 군은 여전히 “발사체”요 “분석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어 지나치게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스럽게도 어제 대변인 문답까지 이어진 북한의 무력도발 살라미 전술은 과거 북한이 대화국면에서 도발국면으로 기조를 전환하면서 사용했던 패턴과 너무 유사합니다. 꼭 10년 전인 2009년 상황을 보면, 그해 4월 5일 2년 인공위성을 빙자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한 북한은 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4월 13일)을 비난하면서 6자회담 거부, 핵시설 원상복구 등을 한 뒤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합니다. 이런 과거 패턴으로 볼 때, 북한은 조금씩 무력도발의 수위를 높여가며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4일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사진 출처 노동신문
북한이 4일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사진 출처 노동신문


다만, 이번 도발은 과거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아직 북한도 대화기조는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ICBM이던 것이 지금은 단거리 미사일이고, 국제사회에 대한 반발도 대변인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에 그쳤습니다. 문답은 한국과 미국 등에 대한 경고로 끝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의 차후 언동을 지켜볼 것”이라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한국 정부는 미국의 묵인 하에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섰고 미국 내에서도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에만 합의하면 제재 완화나 해제 조치를 조기에 단행할 수 있다는 ‘당근’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노이에서 확인한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인식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습니다. 영변 핵시설 해체만으로 사실상 대북제재를 와해시키겠다는 북한, 이참에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주장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올 한해도 북한의 틀에 박힌 ‘도발의 볼레로’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만든 확실해 보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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