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헌법 개정은 김정은 우상화 완결판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30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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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장 인민의 총의에 따라 선거' 명시
3대세습 권력 정당성을 헌법적으로 뒷받침
권력 기반 강화 올인…불안요소 아직 있는 듯

북한이 올해 이례적으로 최고인민회의를 지난 4월에 이어 8월에 다시 개최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두차례 개최하는 것이 2012년과 2014년에 이어 세번째다. 특히 농번기로 바쁜 8월에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한 것은 1970, 80년대 몇차례가 뿐이었다. 그만큼 올들어 두번째 열린 8월 최고인민회의는 이례적이다.

‘이례적’이지만 이번 회의는 하루만 열렸고 의결내용도 4월에 큰 폭으로 개정된 헌법 조항을 보완하는 재개정과 최고인민회의 인사 내용 추인이 전부였다. 얼핏 보기에 시급해 보이지 않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면밀히 살펴보면 이번 헌법 개정은 북한에서 지난 4월의 헌법 개정보다 더 큰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김정은 3대 세습의 헌법적 승인’이자 김정은 우상화의 완결판이기 때문이다.

이번 헌법 개정안을 발의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개정안을 설명하면서 “사회주의 위업 수행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것은 우리 공화국(북한) 정부 앞에서 나서는 중요한 투쟁과업”이라면서 “투쟁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중략)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의 절대적인 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고 국가사업 전반에 대한 (중략) 최고영도자 동지의 유일적 영도를 더욱 철저히 실현하여야 하며”라고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정은의 절대적인 권위와 ‘유일적 영도’를 보장하는 것이 이번 헌법 개정의 최대 목적임을 밝힌 것이다.

이같은 취지에 따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체 조선 인민의 총의에 따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하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는 선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 조항은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의 총의에 의해 추대되고 최고인민회의는 이를 추인할 뿐’이며 따라서 김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보다 상위의 헌법적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대의원이 될 수 없고 최고인민회의의 결정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점은 지난 3월에 실시된 대의원 선거에 김위원장이 출마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북한 헌법 87조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주권 기관”이지만 김위원장은 최고주권기관보다 높은 헌법적 지위를 갖게된 것이다. 또 이같이 강화된 김위원장의 지위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무위원장과 국무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이번 헌법 개정에 포함됐다.

3대 세습을 통해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 등 주요 인물들을 처형하는 등 ‘피의 숙청’을 통해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같은 과정은 그의 권력 기반이 폭력에 의존해 강화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북한 내부에서조차 3대 세습의 정당성이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이후 김정은은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무서운 독재자’ 이미지가 강한 아버지 김정일보다는 ‘인민을 위해 헌신한’ 이미지가 강한 할아버지 김일성을 본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동시에 김위원장이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특별히 유능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 점은 특히 자신이 코스프레하는 할아버지 김일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인민사랑의 최고 화신”으로 우상화하면서 3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논설을 1면 전면에 실었다.

이 논설은 “직무와 지도권을 넘겨받는 것으로 간주되어오던 영도의 계승문제가 본질에 있어서 인민에 대한 사랑의 정신, 헌신적 복무 정신의 계승이라는 사상이 새롭게 밝혀지고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무결하게 해결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어떤 호소나 논리적 귀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도자의 사랑과 정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끌리고 심장이 가리켜 따르는 것으로 하여 (중략) 정치적 안정이 보장되고 있다”고 강조, 김위원장의 권력세습이 ‘인민들의 추대’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헌법 개정이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논설의 ‘인민 사랑’ 논리를 반영한 것이 핵심임을 알 수 있다.

논설은 또 “영도자의 권위와 위신은 결코 시정연한(통치기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인민사랑을 지니고 최악의 시련 속에서 (중략) 업적을 쌓아올린 최고영도자 동지(김정은)는 오랜 정치경력을 가진 국가지도자들도 머리를 숙이는 탁월한 정치가, 위인중의 위인으로 (중략) 칭송과 존경을 받는다”고 강조함으로써 미국, 중국,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은 물론 할아버지 김일성보다도 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유능한 인물임을 은연중 부각시켰다.

또 오늘자 노동신문은 1면에 헌법개정 소식을 사진과 함께 전면으로 게재한데 이어 2면에 최근 연달아 감행한 신형 미사일과 방사포 시험 발사 등 김정은의 군사 행보를 칭송하는 기사 6건을 실었다.

그중 “조국의 존엄과 국력을 만방에 떨치시며”라는 제목의 톱기사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 후손 만대의 행복을 영원히 담보하는 최강의 국가방위력을 갖추기 위한 투쟁을 진두에서 이끄시며 연속적인 승리의 포성으로 세계를 들었다 놓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러 전체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은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또 드리고 있다”고 썼다.

김위원장이 인민의 추대에 의해 국무위원장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은연중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올들어 김위원장의 위상 강화와 우상화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외부에서는 북미, 북중, 북러 정상회담과 미사일 시험 발사에 시선이 쏠려 있지만 막상 북한 내부에서는 이 모든 사안들을 김정은의 권력강화와 우상화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한 지 벌써 거의 8년이 됐다. 그사이 김위원장의 권력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보이던 외부의 시선은 거의 사그라들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여전히 김위원장의 권력 기반 강화와 우상화에 몰두하고 있다.

이 점은 역설적으로 외부의 관측과 달리 김위원장의 권력이 북한 내부에서 아직 안심할 만큼 뿌리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또 주민들에게 ‘수령 무오류설’을 강조해온 북한에서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김위원장의 능력과 권위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젊은 혈기에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과감하게 나섰다가 실패한데 따른 파장과 부작용이 의외로 큰 지 모른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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