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혼란과 상처를 딛고 아이들은 자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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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니콜라 마티외 지음·이현희 옮김/684쪽·1만7000원·민음사

열다섯 살 남짓한 소년 소녀, 새로워서 더 경이로운 몸의 욕정을 동반한, 미숙한 사랑. 처음에는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청맥’(靑麥·1923년)을 떠올렸다. 그러나 백 년 전 안온했던 유럽 중산층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와는 배경의 색상이 전혀 다르다.

프랑스 동북부 공업지대의 퇴락해가는 도시. 우리에게는 ‘중2병’을 떼지 못해 보이는 아이들은 내면의 폭풍을 술, 마약, 절도, 폭주(暴走), 섹스에 버무린다. 그 색깔은 소년 소녀가 처음 만난, 한때 시체가 떠다녔던 호수처럼 끈적거리고 불온하다.

한쪽 눈이 반쯤 접힌, 근육질 몸매를 가진 안토니. 운명과 본능이 섞여 끊임없이 그의 곁을 맴도는, 포니테일 머리의 스테파니. 파열음을 내다 결국 갈라서는 안토니의 부모, 그리고 오토바이 도둑 하산이 둘의 배경을 수놓는다. 악당은 없다. 안토니도 남의 오토바이와 보트를 훔치는 건 다르지 않다.

거의 모든 장(章)에 거대한 파국이 있어 보이지만 각각의 파국은 결국 별것 아니거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려진다. 폭행, 송사, 이혼의 굉음도 애초의 예상이나 기대에 비하면 미미하다. 계속 유예되는 듯한 파국의 느낌이 끈적거림을 더한다. 별일 아니었다는 듯이 아이들은 대학으로, 군대로 뿔뿔이 흩어지고, 우연하거나 계획된 만남을 거듭한다.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스테파니는 안토니의 내부에서 부쩍 자라나 하나의 삶이나 다름없어졌다. 이제 다시는 그녀의 가슴을 만지지 못할 것이다.’

씁쓸함은 마지막 장에 가까워서야 처음으로 처연함의 빛을 띤다. 아이 시절을 잔해처럼 남긴 그들의 삶은 더 서글프지도, 빛나지도 않고 계속될 것이다. 오토바이를 훔쳤던 하산은 중산층의 삶으로 진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더 행복한 것도, 덜 위태한 것도 아니었다.

1978년생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인 이 작품은 지난해 프랑스문학계 최고 권위의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니콜라 마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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