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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화내는 것도 소통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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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화내는 것도 소통의 기술

동아일보입력 2013-09-22 03:00수정 2013-09-22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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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
오가와 히토시 지음/이서연 옮김/256쪽·1만4000원/비전코리아
성질만 내는 것은 화가 아니다. 명확한 논리로 비합리적인 일에 저항하는 행위가 진짜 분노다. 언성만 높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그건 폭력일 뿐이다. 화는 상대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 ⓒshutterstock.com
살다 보면 명언까진 아니어도 은근히 실생활과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 있다. ‘입이 보살’이라든가 ‘패션의 완성은 외모’처럼.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도 그중 하나일 성싶다. 현실에서는 갈등이 생겼을 때 강하게 반응해야 해결되는 경우가 잦다. 민원창구나 소비자센터에 가면 이런 경우를 꽤 본다.

하지만 이 명제(?)에는 두 가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일단 자신의 대화 능력을 반성해야 한다. 성질을 내지 않고서는 그만큼 의견 전달을 하지 못한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 반대로 상대방 역시 일관성 없는 태도를 고민해 봐야 한다. 화낸다고 들어줄 거면 그냥 해줬어도 되지 않을까. 원칙이 흐릿한 대응은 상대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일본 도쿠야마(德山) 공업고등전문학교 철학과 교수인 저자가 볼 때 이런 상황이 자주 목도되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화(怒)’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잘 모르거니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도 익숙하지 않다. 화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강해서, 참거나 삭이거나 표현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특히 그런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동양도 본디 화를 나쁘게 본 것은 아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화 역시 인간의 감정 가운데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불공정한 일이 벌어졌을 때 분명하게 항의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또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화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에너지”로 “적절하게 표출해야 육체도 정신도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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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절함’이다. 무작정 언성 높이고 성질부리는 건 제대로 화내는 게 아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성을 잃는 하책(下策)이다. 진짜 분노할 줄 아는 이는 그럴 때일수록 목소리를 낮추고 냉정해진다. 핵심을 명료하게 전달하되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 진짜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대목은 화의 명분과 정당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분노의 최고수’였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엄격한 자기절제로 비폭력을 지켰기에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켰다.

화내지 않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의 일본이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쿠시마 원전과 신사 참배 문제다. 원전의 경우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무책임한 대응을 일삼는데 어찌 이리 차분할 수 있나. 신사 참배 역시 극우세력이 A급 전범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국민이 좌시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

“몇십 년이 넘도록 미해결인 상태로 이 문제를 방치하는 정치가들은 나태하고 태만할 뿐만 아니라 책임의식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이 지나도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을 만든 주범, 이른바 A급 전범이라고 해야 하는 우유부단한 정치가에게는 단호히 화를 낼 필요가 있다.”

사실 저자와는 올해 초 인터뷰를 했던 인연이 있다. ‘인생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게 계기였는데, 오가와 교수는 종합상사 직원, 시청 공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일까. 확실히 공자 왈 맹자 왈만 읊는 ‘먹물’과는 다르다. 너무 단정 짓는 대목도 있지만, 이렇게 통쾌한 철학책 만나기도 쉽지 않다. 주위에 자주 ‘버럭’ 하는 이가 있다면 꼭 권하시길. 뻔한 화 다스리는 법보다 100배 낫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소통#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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