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고 열이 39도인데 집에…” 유럽, 젊은 환자 수용시설 부족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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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가쁘고 열이 39도지만 집에 있습니다. 죽을지 몰라 사랑하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40대 회사원 안젤라 씨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이런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이달 중순부터 고열, 기침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징후를 겪고 있다. 정부 지시대로 전화기를 들고 15번을 눌러 공공 응급의료서비스 ‘사뮈’에 연락했지만 입원할 수 없었다. 사경을 헤메는 70,80대 고령 환자가 워낙 많아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 그의 자리가 나지 않았다.

안젤라 씨의 사례는 코로나19로 사실상 붕괴된 유럽 의료체계의 현황을 잘 보여준다. 유럽 전체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각각 25만 명, 1만4000명을 돌파해 각국 병원은 넘쳐나는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수술실, 병원 복도, 의료용품 저장고 등을 병실로 활용하고 호텔, 공연장 등을 임시 병원으로 개조했지만 환자 급증으로 한계가 뚜렷하다.

조기에 병원을 찾았더라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젊은 환자들이 숨지는 일도 허다하다. 21일 숨진 영국 여성 클로이 미들턴 씨(21)은 영국 내 최연소 사망자다. 헝가리 주재 영국 부대사 스티븐 딕(37)도 24일 부다페스트에서 숨졌다. 두 사람은 모두 평소 건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최대도시 뉴욕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NYT)는 1800개의 뉴욕시 전체 병상에 27일 환자가 가득 찰 것으로 예상했다. 미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의 한 의료진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멈추지 않는데 병원은 포화상태다. 인공호흡기도 부족해 여러 명의 환자들에게 한 개의 기계를 돌아가며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는 CNN에 “침대와 인공호흡기조차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나 겪을 만한 문제가 뉴욕에서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의료진 감염도 심각하다. 현재 스페인 확진자 4만7610명 중 약 14%(5400명)이 의료진이다.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에서도 의사와 간호사의 15%가 감염됐다. 이는 마스크, 장갑 등 의료용품 부족으로 의료진조차 핵심 방역장비를 재사용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의료진의 감염 위험이 상당히 높아졌고 환자를 돌봐야 할 의료진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는 셈이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이미 이달 초 코로나19 진단 키트 등 각종 장비가 고갈 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25일 영국 공중보건국(PHE)은 최근 혈액 1방울로 15분 만에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자가 진단키트를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확성이 떨어지고 특히 감염 초기 단계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유럽 내 숨은 감염자가 현 통계보다 최소 2배 이상 많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럽 각국의 하루 검사 수는 최대 5000명 정도. 게다가 증상이 없거나 젊은 환자들은 검사 및 진단에서도 후순위로 밀린다. 폴리티코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가장 심각한 상황의 환자들만 검사하고 입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세계 전체의 ‘숨은 감염자’가 실제 확진자의 11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버드대 연구팀 역시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만 수천 명의 확진자가 누락됐다고 발표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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