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세계적 바리스타 ‘폴 바셋’ 서울에 둥지

  • 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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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단맛 뒤에 상큼한 신맛…
“커피, 와인처럼 즐겨보세요”

《도심 곳곳에 커피 향이 짙다.

커피색을 닮은 계절 때문만은 아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카페를 지나고,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든 행인을 스치게 된다.

커피 향이 일상의 냄새를 닮아간다.

이런 때, 유가공업체 매일유업도 커피를 들고 나왔다.

다행히 요즘 차고 넘치는 보통명사 커피가 아니다.

‘폴 바셋’이다.

일본 도쿄의 맛집을 꿰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신주쿠에서 그 유명한 폴 바셋 커피를 마셔 봤다.

내가 마셔 본 카페라테 중 단연 최고다” “빗길에 물어물어 찾아가다 발에 물집이 잡혔다”는 등의 체험담이 인터넷 일본 여행카페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 폴 바셋이 이달 초 매일유업과 손잡고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에 둥지를 틀었다. 폴 바셋은 2003년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최연소로 챔피언에 등극했던 유명 바리스타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였다. 올해 31세가 된 호주 출신의 그가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커피 그 이상의 커피를 들고서.

○ 맛과 향의 신선함

매장에서 만난 바셋은 우선 바리스타에 대한 오해부터 풀기를 바랐다. 바리스타는 단순히 커피를 추출하거나, 라테아트(커피 위에 우유 거품 등으로 하트, 꽃 등을 그림) 솜씨를 뽐내는 직업이 아니란다. “저는 전 세계 커피 농장으로 최상급의 원두를 찾아다녀요.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신과 로스팅(Roasting) 머신 등 장비와 부자재에 대한 컨설팅을 하죠. 다른 바리스타를 교육하기도 합니다. 직접 로스팅을 하고 커피를 추출하는 건 당연하고요.” 그가 하는 이 모든 일이 바리스타의 몫이다. 그의 이름을 내세운 ‘커피 스테이션 폴 바셋’ 역시 바리스타의 역할이 총망라된 로스터리숍(직접 볶은 원두를 사용하는 커피 전문점)이다.

우선 원재료인 생두도 바셋이 직접 엄선한다. 생두는 커피나무의 열매 속 씨앗을 가공한 콩인데, 생두의 신선도는 커피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이 카페에서 만나볼 수 있는 품종은 과테말라, 파푸아뉴기니, 케냐, 하와이, 자메이카, 콜롬비아, 르완다. 브라질산 등이다. 원산지와 농장에 따라 단맛과 신맛이 다르다. 생두를 고르는 과정에서 블렌딩(blending)을 하기도 한다. 여러 품종의 생두를 섞어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과정이다.

로스팅은 생두 선정 못지않게 중요한 공정이다. 커피의 생두를 열처리해 볶는 작업이다. 로스팅을 거쳐 검게 그을린 원두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커피콩이다. 약하게 볶느냐, 강하게 볶느냐에 따라 원두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또 품종에 맞는 차별화된 로스팅은 원두의 개성을 극대화한다. 이 때문에 바셋은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매일유업 관계자가 “워낙 까다로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kg이 됐든 원두를 버린다”고 푸념할 정도다.

“맛있는 커피는 갓 볶은 원두에서 나옵니다. 최상의 맛을 살리려면 생두를 볶은 뒤 일주일 내에는 갈아서 내려 마셔야 하죠.” 바셋의 말이다. 그는 “수많은 커피 전문점이 있지만 대부분 해외에서 볶은 원두를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며 “커피에서 쓴맛이 나거나, 향을 느낄 수 없는 경우는 로스팅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대부분 원두가 신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추출 과정은 바리스타의 노하우가 집약되는 단계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에스프레소의 미묘한 맛의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바셋에게 직접 커피를 청해봤다.

○ 한가지 원두로 두가지 맛

그는 ‘룽고(Lungo)’를 권했다. 에스프레소가 압력으로 단시간에 추출한 20mL의 원액이라면, 룽고는 추출량을 35mL 이상으로 늘려 에스프레소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커피다.

원두는 블렌딩이 돋보이는 ‘폴 바셋 시그니처 블렌드’가 낙점됐다. 신맛은 상큼하게, 단맛은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배합이다. 바셋은 커피에서 달콤함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가 내민 두 잔의 커피. 작은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는 문외한이 맛을 느끼기에는 역시나 지나치게 진했다. 이어 마신 룽고는 진하지만 부드럽게 입안에 감겼다. 과일향처럼 상큼한 신맛이 감돌았다. “신맛이 느껴진다”는 말에 폴 바셋은 다시 룽고를 뽑아 왔다. 진한 달콤함, 이어 느껴지는 신맛. 단맛과 신맛의 조화가 그동안의 커피와 확연히 차별화됐다. 그는 “블랙 체리와 다크 초콜릿 같은 달콤한 디저트를 연상시키는 맛”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에 마신 커피와 같은 원두”라고 덧붙였다. 같은 원두를 가지고 첫 잔은 신맛을, 둘째 잔은 단맛을 강조한 커피를 뽑아낸 것이다.

그에게 커피의 미묘한 맛과 향을 즐기는 노하우를 물어봤다. 그는 “와인처럼 즐기라”고 명쾌한 해답을 줬다. 커피 역시 생두의 산지와 농장에 따라 품종이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바리스타의 솜씨에 따라 풍미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물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며 “다양한 품종의 커피를 마시다 보면 와인처럼 취향에 맞는 나만의 커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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