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칼럼]대학 교문에까지 ‘대못질’ 할 건가

  • 입력 2007년 6월 25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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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공권력이 막강하던 시절, 정부는 위세만으로도 대학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나 권위와 체통을 잃은 이 정부는 나름대로 더 효과적이고 간편한 수단을 선택했다. 대학에 지원하는 돈으로 캠퍼스를 거머쥐겠다는 것이다. 힘으로 복종시키는 것과 돈으로 끌고 가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나쁠까. 전자가 험악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교활하고 역겨운 방법인 후자가 더 나쁘다. 대학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대학사회를 타락시키는 폐해 때문이다. 정부는 대학들의 고교 내신 반영률이 맘에 들지 않자 아니나 다를까 이 무기를 꺼내 들고 노골적으로 대학 협박에 나섰다. ‘말이 천박하고 하는 짓은 치사하다’고 비판 받아 온 이 정부다운 발상이다. 우리의 세금은 이처럼 다양하게 악용되고 있다.

청와대가 비상식적이라는 건 일반인들의 상식처럼 돼 버렸지만 장관들은 또 왜들 이러시나. 흰 물감으로 검은 것을 희게 칠하는 것보다 검은 물감으로 흰 것을 검게 만들기 쉬운 게 세상 이치이듯, 멀쩡하던 사람들도 권부에만 들어가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교수 시절 그렇게 대학 자율을 부르짖었건만 대통령 말 한마디에 소신 대신 감투를 선택한 교육수장 김신일 부총리의 처신은 젊은이들이 절대로 본받지 말아야 할 비교육적 본보기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교육수장의 비교육적 처신

정부와 대학 간의 갈등은 몇 가지 관점에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 선발권을 대학이 가져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대학의 학생 수가 몇 명이 적정하고 또 어떤 식으로 뽑는 게 좋은지는 누구보다 그 대학 관계자들이 가장 잘 안다. 아무리 ‘참여정부’라도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까지 ‘참여’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어째서 대학의 입학정원이나 전형방법에 대해서는 정부가 간섭해도 된다는 오랜 미신이 우리들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것일까. 지금 당장은 어떤 특정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정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해도 비정상적, 구시대적 간섭은 조속히 제거되는 것이 옳다. 교육부 관리들이 돈이나 증원허가권으로 대학의 상전 노릇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개혁’의 대상이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단지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 과정처럼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대학을 단지 고교교육 정상화 수단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대학에 가고 안 가고는 개인의 자유이며, 대학을 못 나온 사람이 대졸자보다 더 높아져 잘 나가기도 하는 세상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대학은 국가 발전의 요체다. 그래서 대학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며 대학의 경쟁력은 강화돼야 한다.

대학입시에서 내신 비율을 높인다고 공교육이 정상화되리라 기대하는 것도 참으로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상대평가로 인해 학생들 간의 인간적 관계는 훼손되고 내신을 위한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 고교들 사이의 학력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명백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그 차이를 없애려는 집권세력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국민은 잘 읽어야 한다. 나는 이 정권 초기에 낭만적 평등주의에 대해 자주 경고했지만 교육에 대한 이들의 맹목적 평등주의는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만일 정부가 지방대학을 육성하고 대학교육의 내실을 다진다는 명분으로 기업들에 ‘입사시험을 없애라, 그리고 대학 성적만으로 사람을 선발하라’고 한다면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그것도 서울 대학과 지방 무명 대학 학생의 성적을 같은 수준으로 인정하라면 그걸 받아들일 기업이 있을까. 그렇게 한다고 우리나라 대학들이 고르게 발전할 리도 없다. 기업은 망하고 대학은 엉망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내신 위주 대입은 대학을 망치고 고교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 뿐이다.]

대학 지키기에 국민이 동참해야

권력자는 상위 20%를 공격해 하위 80%의 환심을 얻는 ‘평등주의 병’에 감염되기 쉽다. 미숙한 정권은 국정을 망칠 수 있는 기간이 기껏해야 임기 5년이지만, ‘평등주의 병’에 걸린 나쁜 정권은 나라의 미래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정부와 대학 간의 내신갈등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다. 국민이 대학의 몸부림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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