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아 기부한다고? 중요한 건 마음입니다[광화문에서/이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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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월급통장에 매달 3000만 원씩 찍히면 어떤 기분인가요?” 몇 해 전 꽤 친해진 야구 선수 A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수도권 팀의 주전이었던 A는 연봉 3억 원을 받았다. 평범한 직장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큰돈을 받는 느낌이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별거 없어요. 그냥 먹고살아요.” 기대와 달리 답변은 싱거웠다. 처음엔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다. 그런데 돈 많은 걸로 알려진 야구 선수들도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많이 버는 만큼 많은 세금을 낸다. 벌이에 맞춰 씀씀이도 커지기 마련이다. 예전보다는 길어졌다 해도 스포츠 선수의 전성기는 여전히 짧다. 대부분 40세 이전에 은퇴한다. 자유계약선수(FA)가 돼 큰 계약을 했던 B는 “처음 큰돈을 받았을 때는 풍족하게 생활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선수로 뛸 날이 얼마 안 남았더라. 이후 돈을 아끼게 됐다”고 했다.

돈 때문에 볼썽사나운 모습도 가끔 벌어진다. 대부분 팀들은 승리한 날 수훈 선수 2, 3명을 뽑아 100만 원 내외의 격려금이나 물품을 준다. 그런데 ‘돈 많은’ 선수들이 그렇지 못한 비주전급 선수들의 상을 가로채곤 한다는 것이다.

서두가 길었던 건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선수 역시 적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다. 돈이 많은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자기 것을 내놓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NC 박석민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도 기부에 동참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런저런 기부로 8억 원 이상을 내놨다. 같은 팀의 박민우도 동참했다. KIA 왼손 에이스 양현종과 KT 내야수 황재균 역시 적지 않은 돈을 기탁했다. 두 선수 역시 틈날 때마다 기부에 앞장서는 선수들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에서는 투수 우규민과 외야수 구자욱이 선뜻 거금을 쾌척했다. 두산 ‘거포’ 김재환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움 신예 투수 김성민도 기부 사실을 알렸다.

롯데 베테랑 투수 장원삼은 자신이 소유한 경남 김해의 상가 임차인들에게 3개월간 임대료를 인하해줬다. 감독 중에서는 류중일 LG 감독과 한용덕 한화 감독이 기부 대열에 합류했다.

KIA의 불펜 포수 이동건의 기부 스토리는 더욱 특별하다. 정식 선수가 아니라 계약직 직원 신분인 그는 2월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맷 윌리엄스 감독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선수’ 4명 중 1명으로 뽑혔다. 상금 250달러(약 30만 원)를 받은 그는 이 돈을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기부했다. 그는 “기부액이 너무 적어 부끄럽지만 마음은 기쁘다”고 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힘든 와중에 선뜻 자기 것을 내놨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한 야구 관계자는 “정작 기부를 하고도 금액이 적다고 비난받을까봐 두려워 이를 감추는 선수도 있다”고 했다.

기약 없이 연기된 KBO리그가 언젠가 문을 열 때 좋은 일을 한 선수들에게는 좀더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야구를 잘하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것이고, 이들은 더 많은 기부로 보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코로나 기부#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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