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균형발전의 핵심… 연구중심대학으로 국가경쟁력 키워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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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퇴임 앞둔 전호환 부산대 총장 인터뷰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대학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부산대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할 것을 제안한 뒤 “부산 지역 발전과 대한민국의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해야 하는 거점 국립대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전 총장은 다음 달 11일 부산대 제20대 총장 임기를 마친다. 부산대 제공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대학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부산대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할 것을 제안한 뒤 “부산 지역 발전과 대한민국의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해야 하는 거점 국립대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전 총장은 다음 달 11일 부산대 제20대 총장 임기를 마친다. 부산대 제공
다음 달 11일 퇴임을 앞둔 전호환 부산대 총장(62)은 임기 말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한때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일본 와세다대가 건전한 재정 독립을 이룬 대학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와세다대학의 개혁’을 최근 번역해 출간했다. 지금은 ‘2036 부산대 미래보고서’의 막바지 집필 작업을 하고 있다. 2036년은 부산대가 개교한 지 9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가 혁신과 비전 제시를 주제로 한 보고서 출간에 공을 들이는 것은 지난 4년간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경험이 부산대 발전에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한국 대학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전 총장은 취임 후 구성원 간 소통을 최우선으로 대학을 이끌어 왔다. ‘준비된 총장’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는 인구 감소기에 대학을 방치하는 것은 곧 한국 사회의 후퇴를 의미하기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학을 육성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일 부산대 총장실에서 전 총장을 만났다.

―4년여 동안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국립종합대학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교(1946년 5월)한 부산대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로 일했습니다. 총장을 하면서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구성원 간 화합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부산대 구성원과 동문, 부산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화합과 소통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를 자랑한다면….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사업단을 유치하고 세계적인 석학인 악셀 팀머만 교수를 단장으로 영입해 온 일을 먼저 내세우고 싶습니다. IBS 유치는 부산대가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정보의생명공학대 설립과 양산캠퍼스의 의생명특화단지 조성도 꼽고 싶습니다. 정보의생명공학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공지능(AI)과 의생명 간의 융합교육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양산캠퍼스의 의생명특화단지는 대통령 공약으로 추진된 사업입니다. 대학이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 밖에 국립예술중고교 특수학교를 유치하는 등 부산대의 발전을 위해 뛰었습니다.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계획한 대로 이루지 못한 일이 있나.


“학내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일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대학이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하려면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한 구조조정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립대 총장은 ‘경영자’가 아니라 ‘집행자’로 불릴 만큼 갖고 있는 권한과 수단이 제한돼 있습니다. 작년 국내 사립대 총장 12명이 출간한 ‘총장의 고뇌’라는 책에서 대학의 혁신을 가로막는 주된 원인으로 교수들의 기득권 유지, 폐쇄적인 사고방식과 경직성 등이 지적됐습니다. 총장 직선제도 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직선제가 걸림돌인 이유는 무엇인가.

“국립대의 총장 직선제는 대학의 자율과 민주정신 함양에 도움이 됩니다. 직선제 대신 국가가 직접 총장 선출에 개입하면 자칫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대학 발전에 역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직선제로 뽑힌 총장은 장기간 대학에서 근무한 교수들이 많습니다. 구성원들과 오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직자들 또한 선거를 도와준 교수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을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직선제 총장인 제가 직선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총장 직선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방안이 있다면….

“다른 학교에서 총장을 초빙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해외 대학에서는 총장 초빙위원회를 구성해 연구력과 리더십이 검증된 다른 대학의 교수를 총장 후보로 추천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사회는 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에 대해 다양한 학내 의견을 듣고 철저한 검증 작업을 합니다. 정부 등 외부에서 개입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한국의 현실에 맞는 총장 초빙위원회를 만들어 총장을 선임하는 방식을 이제는 고려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부산대가 연구중심대학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연구중심대학은 연구를 통해 교육을 더 강화하는 대학입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발전에서 연구중심대학의 역할이 큽니다. 부산대도 지금까지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연구중심대학으로 변모해 지역 발전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부산대는 부산울산경남의 국립대들과 자원을 공유하면서 연구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부산대가 제대로 된 연구중심대학이 된다면 부산의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연구중심대학의 육성이 지역 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될까.


“국가 균형 발전은 교육 균형 발전으로 가능합니다. 인구와 사회 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지방에 좋은 대학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교육 선진국의 우수 대학들은 대부분 연구중심대학으로 지역에 골고루 흩어져 지방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KAIST, 포스텍,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기존의 과학기술 연구중심대학들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소규모이면서 특화된 과학기술 연구중심대학이 가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진주의 우주항공, 창원의 기계기술, 나주·광주의 에너지·자원 등의 지역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연구중심대학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부산대가 지역 성장동력이 되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한가.

“부산대가 부산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정책 발상이 필요합니다. 부산대에 기술개발과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 생태계가 조성된다면 대학과 도시에 긍정적입니다. 문제는 땅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산대 캠퍼스는 약 198만 m²입니다. 하지만 66만 m²만 학교용지로 사용할 뿐 나머지는 근린공원으로 용도가 묶여 있습니다. 부산대가 개교 이후 학생 수는 20배 늘었지만 캠퍼스 크기는 그대로입니다. (늘어난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학교 건물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섰습니다. 그 결과 첨단 실험실이나 스타트업이 들어설 공간이 없습니다. 부산시가 캠퍼스 내 근린공원을 창업 생태계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거점 국립대 연합’에 대해 정부도 의지를 보이고 있다. 거점 국립대 연합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무엇인가.

“거점 국립대 연합체제는 자원 공유와 연계를 통한 공유 성장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으로,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대학이 작동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수도권 집중 폐해 가운데 하나가 우수 대학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상위권 대학 진학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에게 점점 더 유리한 체제가 고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도 거점 국립대 연합이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연합 과정에서 현행 대학 체제에 대폭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단초들도 나올 수 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립대 시스템과 프랑스와 독일 대학 체제가 롤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거점 국립대는 과다한 학부 정원을 줄이고 정부는 재정을 더 지원하면서 거점 국립대 간의 공동입학제 도입, 학생 교류 및 자원 공유 등을 실천해야 합니다.”

::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

○ 1958년 경남 출생
○ 부산대 조선공학과 학사, 석사, 영국 글래스고대 조선해양공학 박사
○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부산대 조선해양플랜트글로벌핵심연구센터 소장
○ 부산대 제20대 총장

부산=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부산대#전호환 총장#연구중심대학#국가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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