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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보다 기억을 택했다… 내 글은 고발이 아닌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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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보다 기억을 택했다… 내 글은 고발이 아닌 고백”

김지영기자 입력 2019-11-15 16:44수정 2019-11-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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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젊은 글쟁이를 만나다/김민섭]
“나의 글쓰기는 나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는 김민섭 씨.그는 “독자들이 내 글을 담담하게 읽고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김민섭 찾기’는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SNS의 기적이다. ‘김민섭’이 자신 대신 후쿠오카 여행을 가줄 ‘김민섭’을 찾은 일.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 사정이 생겨 계획했던 후쿠오카 여행을 못 가게 된 김민섭 씨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면서다. 10만 원을 지불하고 항공권을 구입했지만 취소할 경우 돌려받는 돈은 2만 원도 안 된다는 걸 알고는, 환불금을 받을 바에야 다른 사람한테 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행 갈 사람을 생각보다 찾기 어렵더라고요. 항공사에 문의하니 ‘영문 이름까지 같은 대한민국 남성’이어야 한다고 하기에요!” 최근 만난 작가 김민섭 씨(36)는 빙그레 웃으면서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얘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페친들이 응원의 댓글을 썼고 ‘좋아요’를 눌렀고 김 씨의 글을 공유하면서 ‘김민섭 찾기’는 널리 알려졌다. “사흘이 지났을 때 연락이 왔어요. 졸업을 앞둔 미대생인데 졸업전시 비용을 모으느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요.”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가 성공했음을 알린 작가 김민섭 씨의 페이스북. 인터넷 캡처
기적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다. 가난한 학생들을 가르쳐온 교사라고 밝힌 누리꾼이 ‘숙박비를 보태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후쿠오카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그린패스권을 갖고 있다며 보내주겠다는 사람, 사용하지 못했던 후쿠오카 타워 입장권을 주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와이파이렌털 사업자라면서 통신비를 지원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83년생 작가 김민섭 씨와 300여 명 누리꾼들에게 항공권과 여행경비 250여만 원을 지원받은 93년생 대학생 김민섭 씨는, “훗날 저도 2003년생 김민섭 씨를 찾아 여행을 보내주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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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느꼈어요.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 모든 사람에게 배워야겠다는 것. 연구실은 대학에만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회로 나가서 지도교수를 많이 만난 거죠.” 대학 연구실이 세상의 전부였던 김민섭 씨다. 국문학도로 일찌감치 공부의 길을 택했고 8년 여 대학에서 지냈지만, 이제 그는 길에 나와 공부하고 있다.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고발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2015·‘지방시’)를 펴낸 뒤 그는 대학을 나왔고, 밥벌이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면서 겪은 사회 현실을 담은 ‘대리사회’(2016)에 이어 경직된 교훈과 가훈 등에 갇혔던 시대의 내면을 들여다본 ‘훈의 시대’(2018)를 출간했다.

3년 전 ‘대리사회’가 나왔을 때 ‘대학강사 출신 대리운전사’라는 이력뿐 아니라 그가 경험한 세상의 맨얼굴에 대한 고백으로 인해 화제가 됐던 터다. 네,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세 마디가 업무의 화법이고 오디오, 사이드미러, 에어컨 어느 것도 운전자의 뜻대로 작동하면 안 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남의 차니까. 유흥에 돈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자랑하다가 대리운전비 몇천 원으로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 두 개 이상 대리운전 회사에 연락해선 먼저 오는 기사와 훌쩍 가버려 늦게 온 기사를 분노하게 하고 허탈하게 하는 사람…. 김민섭 씨가 보기에 이 부끄러운 사회는 밤에 만난 몇몇 사람들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 부하 직원은 직장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학생은 교사의 의도에서 벗어난 답을 제출하지 않는다. 아이 역시 부모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대리사회’에서)

대학에서의 공부 말고 다른 걸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지방시’를 쓰면서 대학 바깥에서도 공부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건강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을 등록받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일주일에 사흘 이상 근무해야 했다. 시간강사 신분으로는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였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책에서 배울 수 없던 많은 걸 알게 됐어요. 지식을 배운다기보다는 지평이 넓어지는 걸 깨닫게 됐지요.” 2015년 12월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둡니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대학에서 나온 자신의 선택에 대해 김민섭 씨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는 저를 두고 ‘대학문을 박차고 당당히 나왔다’고 하던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내 길을 찾아 문을 열고 나왔다’고.”

8년을 논문만 읽고 썼던 그이지만 그전에는 논문 아닌 글을 꾸준히 썼다. 중학교 때부터 PC통신 천리안 게시판에 거의 매일 자신의 경험을 담은 일기를 올렸다. “호응도 있었지만 악플도 엄청났어요. 그걸 겪다 보니 멘털은 단단해지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지속적으로 올린 글이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었다. 고교 2학년 때 첫 책 ‘831019 여비’를 출간하게 된 계기였다.

연구자로서 논문이라는 글쓰기에 몸을 맞추던 어느 날, 그의 소논문을 본 어머니가 “잘 썼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잘 쓴 거겠지?” 김 씨는 충격을 받았다. 공부해서 남들이 이해 못하는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배운 걸 타인에게 잘 전달하는 게 공부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의 글은 쉽게 읽힌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다. 학교가 아닌 거리에서의 공부를 택했을 때도 그 깨달음은 유효했다.

김민섭 씨는 글을 쓸 때 단어와 표현을 고르는데 많은 신경을 쓴다고 했다. “누구든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언급되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상처받지 않도록 고민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무엇보다 가져야 하는 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동아일보DB
김 씨의 글은 ‘르포 문학’으로 분류된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고 알려지지 않은 이면을 드러내서다.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가 ‘르포 문학’으로 불리는 데 대해 “대학에서 문학 공부를 하다 보니 장르라는 구분이 모호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많은 글쓰기가 하나의 장르에 갇혀 있지 않다는 얘기다. “저도 쓰다 보면 이게 에세이인지, 사회과학인지, 인문과학인지 모르겠더라고요(웃음).” 자신의 글이 ‘고발’로 불린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고발이 아니라 고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방시’를 썼을 때 나는 나 자신을 기록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잃어갈 것 같아서요. 사람들은 기억보다는 추억이 좋다고들 하는데, 저는 추억하기보다는 기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추억하다 보면 문제의식을 갖고 변화시키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여기기 쉽거든요.” 그는 “나를 기록하기 위해서 써나간 글이 당신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됐다”면서 “그런 면에선 나의 이야기가 결국 가장 사회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 씨는 최근 정미소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김 씨와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책을 내고 싶어서다. “제가 공부하고 경험하는 속도보다 책들이 쏟아지는 속도가 빠릅니다. 자칫 저 자신이 소진되고 동어 반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신을 채우기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그는 작가를 발굴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미소에서 도정을 거쳐 흰 쌀이 나오는 것처럼 작가의 고백이 도정을 거쳐서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북크루라는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어 작가와 독서모임을 연결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분주해 보이지만 모두 책으로 수렴되는 활동이다.

글쓰기와 강연, 사업으로 생계를 영위할 정도가 됐으니 더 이상 대리운전은 안하는 걸까. “물론 때때로 합니다. 얼마 전 지방 도서관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행사가 끝날 무렵 집 방향으로 가는 콜이 (핸드폰에) 떴기에 콜을 잡고 집으로 갔죠(웃음). 수입에 보탬이 되기도 하지만 제 삶에 필요할 때가 있어요. 노동을 할 때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됩니다. 소재뿐 아니라 글을 쓸 수 있는 겸손한 몸을, 마음을 갖게 돼요.”

김민섭 씨의 저서 ‘대리사회’에 실린 일러스트. 타인의 차를 대신 운전해야 하는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김 씨는 현대사회의 인간이 자신의 신체와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 사유까지도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허범욱 일러스트. 와이즈베리 제공

● 김민섭 작가의 글쓰기 노하우

①불특정다수에게 보여준다=“친한 사람 말고,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올렸고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타인을 의식하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나를 과하게 드러내면 보는 사람들은 피로해 하더라고요.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아야 하지요.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글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의 온도로 글을 써야 사람들이 추천해주고 댓글이 달린다는 걸 자연스럽게 감각하게 됐어요.”

②느슨한 방식의 글쓰기 모임을 만든다=“강력한 연대가 아니라 느슨한 연결의 모임을 추천합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카카오톡에 단톡방을 만들어서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반응을 나누는 거죠. 쓰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글을 안 쓰면 벌금을 물리는 것 같은 강제성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에요. 너무 친해지면 모임을 해체해야 해요! 그럼 객관적인 판단을 해주기 어렵거든요.”

③글쓰는 나를 완벽한 타인으로 본다=“자기가 쓴 글을 볼 때 자기 말고 친구가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글 쓰는 김민섭과 글 읽는 김민섭을 다른 사람으로 분리해요. 이걸 어떻게 연습하는가 하면, 글 쓴 걸 서랍 안에 두고 아예 꺼내놓질 않는 거예요. 사흘쯤 뒤에 다시 꺼내 보면 ‘내가 이런 글 쓰고 밥 먹었구나’ 싶어요. 물리적·심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부족한 부분이 확 보이는 거죠. 그래야 그 부분을 고치고 채울 수 있어요.”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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