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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대한민국” 발랄한 그들은 강했다… U-20 월드컵서 ‘한국축구 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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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대한민국” 발랄한 그들은 강했다… U-20 월드컵서 ‘한국축구 새 역사’

루블린=이승건 기자 , 정윤철 기자 입력 2019-06-13 03:00수정 2019-06-13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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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 쓴 한국축구]에콰도르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
경기前 “멋지게 한판 놀고 나오자”… 결과보다 과정 즐기는 긍정 DNA
16일 새벽 우크라이나와 우승 격돌
세계정상 향해 거침없는 질주 한국 대표팀의 최준이 12일 폴란드 루블린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4강전에서 전반 39분 이강인의 절묘한 패스를 선제 결승골로 연결시킨 뒤 두 팔을 벌리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은 이탈리아를 역시 1-0으로 꺾은 우크라이나와 16일 우치에서 우승컵을 놓고 결전을 벌인다. 루블린=뉴스1
“그리워, 그리워, 니가 너무나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경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는 노래가 흘렀다. 목소리가 커지면서 노래는 합창이 됐다. 다 같이 두 팔을 흔드는 율동이 버스를 흔들 듯 고조됐다. 격렬했던, 긴장됐던 순간들은 노래와 웃음 속에 녹아 스러지고 있었다. 조영욱(FC 서울)이 “우리의 떼창을 보여주자”고 하자 이재익(강원)이 가수 노을의 ‘그리워 그리워’를 재생시켰을 때였다.

이에 앞서 선수들은 깜짝 세리머니를 펼쳤다.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한국과 에콰도르의 4강전이 열렸던 12일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 큰 북을 치며 응원하던 한국 응원석 앞에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일렬로 늘어섰다. 관중에게 인사를 한 선수들은 갑자기 “정정용! 정정용!”을 외치더니 생수병들을 꺼내 들고 줄 한가운데 있던 정정용 감독(50)에게 물을 뿌려 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물세례에 감독은 고개를 숙였다. 선수들은 아버지뻘인 정 감독의 등을 친구처럼 두드려 댔다.

흠뻑 젖은 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정 감독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세리머니였어요”라고 입을 연 정 감독은 선수들의 ‘흥’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선수들은 흥이 많아요. 경기를 마친 뒤에는 자유롭게 표출합니다. 춤을 추는 선수들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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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만 흥이 넘치는 건 아니다. 정 감독 자신도 이번 대회에서 “멋지게 한판 놀고 나오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친구 같고 형 같고 동생 같은 감독과 선수들이 발랄함 속에 한국 축구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 대표팀은 이날 에콰도르를 1-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 남자축구가 FIFA가 주관한 대회 결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16일 오전 1시 폴란드 우치에서 우크라이나와 결승전을 치른다.

어느 대회보다 극적인 승부가 많았지만 대표팀은 승부가 주는 압박감에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16강전에서는 전반에 밀리다가 역공으로 후반 막판 결승골로 승리했다. FIFA는 난적들을 물리친 한국과 세네갈을 함께 ‘강철로 된 신경(Nerves of Steel)’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 박지성-손흥민 보며 큰 세대… 부담은커녕 버스 안 승리 떼창 ▼

“즐겨라 대한민국”
승패 떠나 신나게 뛰는 축구, 그 모습 보며 팬들도 기분 좋아져

한국은 그런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7번의 비디오판독(VAR)과 3차례의 동점을 이루며 연장전까지 승부를 내지 못했다.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뒤처졌으나 기어코 역전승했다.

이강인(발렌시아) 외에 특별한 스타가 없었던 대표팀은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 등 강호들과 ‘죽음의 조’에 속한 이번 대회에서 약체로 꼽혔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회를 3주 정도 앞두고 선수들을 만나보았는데 대부분이 ‘우승’을 목표로 한다고 말해서 솔직히 좀 놀랐다”고 했다. 좀처럼 주눅 들지 않는 면이 이번 대표팀의 특징이다. 4강전 승리 주역인 골키퍼 이광연(강원)을 지도해온 박효진 강원FC 수석코치는 “광연이는 지금까지 우리 팀에서 (K리그1) 경기를 한 번도 못 뛰었는데 그 때문에 기가 죽거나 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항상 밝고 인상 찡그리는 걸 못 봤다. 형들에게도 기죽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선수가 아직 어리기에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지기 싫어한다. 경기가 안 풀리는 날엔 물병을 걷어차거나 아무리 달래도 우는 선수들이 있다.

이 같은 자신감과 승부욕은 박지성 손흥민(토트넘) 등 한국이 배출한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보며 자란 신세대들이 선배들을 롤 모델로 삼으며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만큼 해내야겠다는 목표의식을 길러왔기 때문이다.

팀 전체에 흐르는 밝은 기운도 무시할 수 없다. 4강전 결승골을 넣은 최준(연세대)을 지도하는 최태호 연세대 코치는 “옛날에는 한번 지면 분위기가 싸늘해졌는데 지금 선수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 쾌활하게 생활한다. 우리 세대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는데 이제 우리가 적응해야 할 것 같다. 40, 50대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결과에 집중하면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사라지는 순간 긴장도가 올라가고 경기력이 나빠진다. 반면 과정에 집중하면 어렵겠다는 순간에도 잘할 수 있다. 신나고 즐기는 축구는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의 경기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개인과 팀 기량을 다 이끌어낼 수 있다. 지금 대표팀이 그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강인이 어릴 적 출연한 KBS ‘날아라 슛돌이’ 해설을 맡았던 방송인 이병진 씨는 “요즘 축구 선수들이 강제로 시켜서 하거나 공부를 못해서 하는 게 아니잖나. 좋아서 하는 아이들이다 보니 확실히 기존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이 버스 안에서 노래 부르는 걸 보면서 축구를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우승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선수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상황이 됐다. (우승 등) 이슈가 있어야만 한국 스포츠가 뜨거워지고 한 점이 미안해졌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처럼 뭉친 대표팀은 무얼 하든 그라운드 밖에 있는 선수들도 배려하며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다. 팬들 역시 흐뭇하다. 4강전이 열린 폴란드 현지를 찾은 한국 팬의 상의에는 “즐겨라 대한민국”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루블린=이승건 why@donga.com / 정윤철 기자
#u-20 월드컵#청소년대표팀#에콰도르#결승 진출#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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