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작가 양경수씨 “힘들다 말 못하는 직장인 속내 뻥 뚫리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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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펴낸 SNS 스타 그림작가 ‘양치기’ 양경수씨

양경수 씨는 “죽도록 힘들었던 속내를 표현한 작품으로 공모전 상을 받은 뒤 자괴감이 들어 순수미술을 관뒀다. 웹툰을 연재하지만 난 웹툰 작가가 아니다. 감히 윤태호 작가님과 같은 직업군이라 할 수 없다. 언젠가 ‘그림왕’이 되길 꿈꾸는 그림 작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양경수 씨는 “죽도록 힘들었던 속내를 표현한 작품으로 공모전 상을 받은 뒤 자괴감이 들어 순수미술을 관뒀다. 웹툰을 연재하지만 난 웹툰 작가가 아니다. 감히 윤태호 작가님과 같은 직업군이라 할 수 없다. 언젠가 ‘그림왕’이 되길 꿈꾸는 그림 작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그림왕 양치기(梁治己)’.

 건네받은 명함 복판의 타이틀이다. 배경에는 선글라스 낀 석가모니불과 작가가 마주 앉아 사운드 믹싱기를 조작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 최근 발칙한 제목의 그림에세이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오우아)을 펴낸 양경수 작가(32)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스프레이 살충제를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그의 페이스북 ‘약치기 그림’ 페이지 팔로어는 14만8000여 명에 이른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8만1800여 명. 5월에는 일본 사회비판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번역본 삽화 작가로 글보다 크게 주목받았다. TV에서는 그의 그림을 영상으로 재구성한 홍삼제품 광고가 방영되고 있다.

  “피곤한 몸으로 잠을 청하지만 내일이 올까 겁나 잠들 수 없어. 멋지게 사는 것보단 먹고사는 게 중요해졌어. 힘든데 너무 힘든데 힘들다 말하기 힘든 세상이라 더 힘들어….”

 서문을 대신한 ‘그림 배경음악’ 가사는 “워어어어얼 화아아아 수우우 모옥 금 퇼”을 달리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남몰래 열광하는 직장인 독자들을 위해 ‘싶어증입니다, 일하고싶어증’이라는 제목의 ‘출퇴근용 책표지’를 부록으로 붙였다. 하지만 양 씨는 “나는 직장인의 대변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늘 ‘회사 생활 해 봤는지’ 질문부터 받는다. 직장 경험 없다. 스무 살 때 2만 원 들고 집 나와 닥치는 대로 일해 생활비와 학비 벌며 살았다. 친구들 만났을 때 나 빼놓고 하는 직장 얘기 듣고 끼적이기 시작한 그림들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몇 컷을 보고 포털사이트와 출판사가 연락을 해 왔다.”

직장인의 일과를 시간 순으로 풍자한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중 한 장면. 작가는 “그림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해서 작업한다”고 했다. 오우아 제공
직장인의 일과를 시간 순으로 풍자한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중 한 장면. 작가는 “그림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해서 작업한다”고 했다. 오우아 제공
 카페와 바 점원, 클럽 아르바이트, 홍대 앞 놀이터 액세서리 노점상, 대리운전, 점포 인테리어 등 온갖 일을 하면서도 그는 언제나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양 씨의 부친은 사찰 등의 단청 제작 기술자였고 모친은 탱화를 그렸다. 집에 널린 게 그림 도구와 물감이니 글을 깨치면서부터 그림을 그린 것.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공부했다.

 “가출한 뒤 모든 시간이 다 나 스스로 선택한,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취미나 기호를 찾는 게 아니라 진짜 나, 내가 할 일을 찾는 과정. 집을 나왔지만 불교미술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고 밑천으로 삼았다. 종교를 갖자고 결심한 건 아니다. ‘나와 남을 존중하는 모든 이가 부처’라는 불교적 삶을 그림을 통해 추구하기로 한 거다.”

  ‘부모님과 다른 방식으로 그려 보자’는 생각으로 재해석해 그린 양 씨의 ‘팔상도’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주목받아 현재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석가모니의 삶을 슈퍼히어로의 자기극복 성장기로 탈바꿈시킨 것. 명함 속 이미지는 그중 하나다. 그는 “욕먹을 줄 알았는데 스님들이 좋아해주셔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직장인 그림에세이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내놓았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직장인들이 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내 언어로 풀어놓은 그림일 뿐이다. 속내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나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읽고 반가워해준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에는 간혹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거나 보고 있으니 나라가 안 돌아간다’는 비판적 댓글도 달린다. 양 씨는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소통의 장이 확대되며 사회 전반의 사고가 진화하고 있다. ‘솔직히 토로하면 큰일 난다’는 공감이 ‘개인이 온전한 진심을 표현할 때 조직 구성원으로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실어증입니다#일하기싫어증#그림작가#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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