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울증을 앓고 동물을 아낀 리얼리스트, 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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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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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연암/간호윤 지음/356쪽·1만5000원·푸른역사

“세상 사람들은 모난 것을 싫어하고 둥근 것을 좋아한다. 글자를 써서 글을 만드는 데도 무너지고, 기름지고, 미끈하나, 실은 다 아슬아슬해 계란을 포개놓은 것 같다. 매형은 글자를 쓸 때 삐쭉하건, 모나건, 비스듬하건, 바르건 못 쓰는 게 없다. 다만 둥근 것을 싫어한다.”(처남 이재성이 바라본 연암)

2003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펴내며 국내에 고전 읽기 열풍을 일으킨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는 연암 박지원(1737∼1805)에 대해 ‘근대화되기 전 조선사회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유를 한 매력적인 지식인’이라고 평했다. 그가 남긴 글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파격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연암을 어떠한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또한 쉽지 않다.

국문학자로 연암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연암과 동시대를 산 동료 학자 및 가족, 후손, 그리고 연암 자신 등 11명의 필자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연암의 다양한 면모를 이야기하는 형태의 독특한 평전을 펴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또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해학적으로 비판한 인물로만 바라볼 때 놓칠 수 있는 연암의 입체적인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연암의 아내인 이씨 부인(1737∼1787)은 “그이는 나 이외의 여인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연암이 기생집 다니는 것보단 동료 지식인 한두 사람과 술상을 마주한 채 글을 읽고 감상하기를 좋아했다는 것. 아들 박종채(1780∼1835)는 “연암이 개와 기러기, 까마귀도 귀하게 대할 정도로 심성이 따뜻했다”고 털어놓는다.

연암은 스스로를 ‘조선의 삼류선비’라 칭했다. “술 권하는 과거(科擧)의 나라, 이 조선에서 태어난 나는 열일고여덟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 서른넷에 과거를 포기하는 대신, 술과 벗, 글쓰기와 제자들을 얻었다. 내 병든 삶을 치유해준 소중한 만남들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책의 향기#인문사회#연암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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