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당신이 보는 현실이 한여름 밤의 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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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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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수장룡의 날/이누이 로쿠로 지음·김윤수 옮김/264쪽·1만1500원·21세기북스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현실과 비현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미로 같은 소설이다. 21세기북스 제공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현실과 비현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미로 같은 소설이다. 21세기북스 제공
동생 고이치가 누나 아쓰미에게 말한다.

“‘바나나피시’ 읽은 적 있어? 샐린저 거. 정확한 제목은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이었나.” “여름에 리조트 해안에서 시모어 글래스라는 남자가 우연히 시빌이라는 여자애를 만나게 되지. 그 애와 바나나피시라는 상상 속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하게 돼. 시모어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런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시빌은 ‘방금 한 마리 봤어요’라고 말하지. 시모어는 ‘그럴 리가’ 하면서 깜짝 놀라. 호텔방으로 돌아온 뒤 시모어는 권총으로 자살해.”

말을 끝낸 동생은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며 말한다. “시모어는 시험해보고 싶어진 거야. 이게 정말 현실인지….” 동생은 방아쇠를 당긴다.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전개된다. 그 단초는 SC인터페이스라는 기계를 통해 혼수상태인 환자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신기술 ‘센싱’이다. ‘센싱’은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을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나게 한다. 이를테면 유년시절이나 과거 즐거웠던 순간, 그리고 자살 순간까지도. 아쓰미는 자살 미수에 그쳐 식물인간이 된 동생과 ‘센싱’을 하며 점차 동생의 자살 동기에 대해 접근해간다.

‘센싱’을 하며 아쓰미는 점차 현실감을 잃어버린다. 앞서 동생의 권총 자살을 목도했던 아쓰미가 ‘사실 이것은 센싱일 뿐이야’라면서 안도할 때 갑자기 시끄럽게 인터폰이 울려 깨는 것처럼. 실제는 한낮 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현실, 센싱, 꿈을 오가며 아쓰미는 점점 더 혼란스럽다.

‘센싱’ 과정에 나오는 상상의 공간에는 제3자의 개입도 가능하게 돼 그 속에서 만난 동생이 진짜 동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유까지 확장되며 작품은 더욱 복잡하게 변한다. 이쯤이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화자인 아쓰미도 아쓰미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싼 확고한 현실세계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불명확한 세계로 바뀌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독자 또한 아쓰미처럼 눈앞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을 끊임 없이 의심하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아쓰미의 뇌 속을 탐험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로 흥미롭다.

상상의 세계를 다뤘지만 역설적으로 작품은 매우 현실적이기도 하다. 놀랍도록 세밀하고 차분한 일상 묘사, 인물들의 간결한 대화는 군더더기 없이 정갈해 사실성을 높인다. 시원한 섬과 바다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은 야자수 그늘에서 잠깐 졸았다 깬 듯한, 기분 좋은 백일몽을 경험하는 것 같다. 특히 집안에 갑자기 물이 가득 차고 한 사내아이를 등에 태운 거대한 수장룡의 몽환적인 유영은 비현실적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작품은 후반으로 갈수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흡입력을 높인다. 물론 가장 큰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책장을 덮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엔딩 또한 상상이 아닐까’ 싶다. 믿을 게 없다. 이미 책에 중독된 것 같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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