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이 책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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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용 작가 ‘침입자들’ 눈길… 수상작 아니면 묻히는 관행 깨
잠재력 갖춘 작품 발굴 계기 기대

낙선 이력을 밝힌 이 책은 좀 독특하다. 2002년 장르문학 계간지로 등단한 소설가 정혁용 씨(48)가 최근 출간한 첫 책 ‘침입자들’(사진)이다. ‘최종심 후보작’이긴 하지만 낙선은 낙선. 문학상 수상작임을 내세우는 많은 책 가운데서 단연 눈에 띈다.

‘행운동’이란 지역의 택배 기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이 작품을 알아본 이는 낙선작을 투고했던 여러 출판사 중 한 곳인 다산책방의 이호빈 편집자였다. 이 편집자는 “올해 초 투고된 원고가 너무 재밌어서 잡자마자 단숨에 다 읽어버린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다는 건 후에 작가를 만난 뒤 알게 됐다. ‘느낌이 왔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초고속 출간을 했다.

하지만 책을 처음 낸 무명작가를 어떻게 홍보할지가 고민이었다. 편집팀은 작가를 설득해 ‘최종심 후보작’임을 프로필과 띠지에 넣었다.

“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중엔 이렇게 단행본으로 충분히 출간할 만한 작품이 많을 수 있어요. 기존의 문학적 문법과 다르다는 등의 여러 이유로 ‘단 하나의 수상작’이 되지 못한 것뿐인 것 같아요. 독자들에겐 훨씬 재미있을 수 있는데 빛을 보지 못하는 거죠.”(이 편집자)

이 작품은 운이 좋은 경우다.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문학상 수상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출판계에서 무명작가가 장편 출간 기회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작가 역시 책 낼 기회를 얻지 못해 지금까지 택배 기사로 일하며 소설을 썼단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두 개의 장편을 써서 문학상 두 곳에 응모했다. 둘 다 최종심에만 들었다”고 회고한다. 한 문학평론가는 “많은 문학상 응모작이 떨어진 뒤 다른 문학상을 전전하며 떠돈다. 공모전을 포함해 보다 다양한 기회를 통해 작품들이 발굴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정혁용#침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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