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공보다 큰 진천뢰, 왜적 떨게한 시한폭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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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석 교수, 고문서 토대 구조 규명
임진왜란때 쓴 ‘조선의 비밀병기’… 지름 33cm 성인남성 무게로 밝혀져
폭발시간 조절 등 수준급 과학기술

“왜적을 토벌하는 계책으로 진천뢰(震天雷)보다 더 나은 것이 없었다.”(향병일기·계사년(1593년) 2월 9일)

“진천뢰는 효과가 있어 왜적의 간담을 벌써 서늘케 하니 지극히 기쁘지만, 안동의 진영에는 3개뿐인 데다 화약이 바닥나 수송할 수가 없다.”(향병일기·계사년(1593년) 1월 16일)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육지에서 왜군의 조총에 밀려 고전했지만 화포와 포탄을 사용한 전투에서는 수준급의 과학기술로 왜군을 압도했다. 화포에 넣어 쏘는 대형 시한폭탄인 진천뢰도 왜군을 두려움에 떨게 한 조선의 비밀 무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무기 제조법이 일급비밀로 부쳐지면서 기록이 소실됐고, 출토된 적도 없어 지금까지 구조와 모습, 특징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베일에 싸여 있던 진천뢰의 구조와 원리를 국내 공학자가 처음으로 밝혀냈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초빙교수(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68·사진)는 진천뢰가 농구공보다 크고 성인 남성 한 명의 무게를 자랑하는 거대한 시한폭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19일 공개했다. 채 교수는 고(古)화기 전문가로 고문헌을 통해 신기전과 화포, 거북선 등을 연구해 왔다.

진천뢰는 포탄에 불을 붙이는 점화장치인 ‘주격철’을 포탄에 넣어 적진에서 터지도록 설계한 시한폭탄이다. 조선 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이서가 1635년 저술한 화약무기 병서인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진천뢰는 철로 113근(67.8kg)인 둥근 몸통을 만들고 속에 화약 5근(3kg)과 까치발 모양의 능철(마름쇠) 30개를 채워 만들었다. 폭발 시간 조절은 ‘주격철통’이라는 긴 구조물에 넣은 도화선으로 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면 도화선이 타들어 가다 일정 시간이 지나 화약에 닿아 폭발한다. 마치 수류탄이 터지듯 몸통 파편과 마름쇠가 튀어나가 적을 공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채 교수가 진천뢰의 구조를 연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크기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정확한 크기를 기록한 기록물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채 교수는 진천뢰가 ‘대완구’에서 발사됐다는 화포식언해 기록을 토대로 진천뢰의 지름을 추정했다. 대완구는 대형 포탄을 발사할 때 쓴 조선시대 대포 중 하나인데 세종 30년(1448년)에 개발된 총통완구와 같은 크기로 알려져 있다. 총통완구에는 지름 33cm의 포탄이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채 교수는 이를 토대로 진천뢰의 지름이 농구공의 약 1.4배인 33cm로 추정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진천뢰#채연석 교수#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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