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대 재산’ 재일동포 기업가 한창우 씨 “韓日우호 위해 내가 번돈 다 내놓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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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 원에 이르는 재산을 모아 일본에서 22번째 부자(2009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발표)에 오른 재일동포 기업가 한창우 마루한 회장(80·사진)이 전 재산을 한국과 일본 양국에 환원하겠다고 4일 밝혔다. 마루한은 일본 빠찡꼬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재계 순위 17위의 대기업이다.

그는 이날 일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고 일본은 나를 키워준 나라로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도록 하는 데 생애 나머지 부분과 재산을 바치려고 한다”며 전 재산 기부 의사를 밝혔다. 또 그는 “어떻게 재산을 환원할지 요즘은 눈만 뜨면 고민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번 돈은 전부 한일 양국의 우호발전을 위해 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씨는 이날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제19차 세계한인상공인지도자대회(한상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갔다. 한 씨의 차남이자 마루한의 사장을 맡고 있는 한유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가족과 상의한 적이 없어 아직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평소 사회공헌활동에 힘써온 만큼 충분히 이해가 된다”며 “아버지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고령인데도 해외 출장을 다닐 때에는 비서 없이 혼자 다니기로 유명하다. 한국 방문이 잦은 그는 공항에서 내려 호텔로 갈 때도 가장 빠르다는 이유로 버스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회장은 1990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장남의 이름을 따 만든 ‘한철 문화재단’의 기금 규모(설립 당시 30억 원)를 조만간 14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지난해 경남 사천시에 개인 재산 50억 원을 들여 설립한 ‘한창우·나카코 교육문화재단’에도 50억 원을 추가로 출연할 계획이다. 마루한은 해마다 회사 순이익의 약 1%를 사회단체 후원금으로 쾌척하고 있다. 그는 200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돈을 버는 건 기술이지만 돈을 쓰는 건 예술이다. 좋은 예술이 영원히 남듯이 돈을 좋은 데 사용하면 그 돈의 가치는 계속 남게 된다”고 돈에 대한 철학을 밝힌 바 있다.

한 회장의 근면검소한 정신은 불우했던 청년시절과 무관치 않다. 경남 사천 출신인 그는 가난을 이기지 못해 16세 때인 1947년 일본 밀항선을 탔다. 쌀 두 되와 일한사전 한 권만 들고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고학으로 호세이(法政)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결핵으로 수차례 쓰러지기도 했다. 어렵사리 졸업한 후에도 형편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후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에서 불법입국자가 취직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던 한 회장은 호구지책으로 빠찡꼬 업체에 취직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빠찡꼬가 우후죽순 커가던 시기. 그는 밤을 새워가며 빠찡꼬에 대해 연구했고 자신의 가게를 하나둘 늘려가기 시작했다. 1967년에 볼링장 사업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크게 좌절을 겪은 후 빠찡꼬에만 전념했다.

한 회장은 결국 마루한을 점포 수 258개, 종업원 1만5000여 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일궈냈고 현재는 음식업, 건축업, 금융업에까지 진출해 연간 매출이 30조 원에 이른다. 특히 그는 꼬박꼬박 세금을 내 ‘빠찡꼬=탈세의 온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려고 노력해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일본 정부로부터 곤주호상, 수이호상 등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한 회장은 2002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일본 국적 취득을 두고 말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한 회장의 생각은 다르다. “동포들이 거주국의 국적을 취득해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는 것. 그는 평소에도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민족은 바꿀 수 없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한민족임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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