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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8년 만에 ‘명예’ 회복 오웅진 꽃동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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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8년 만에 ‘명예’ 회복 오웅진 꽃동네 신부

입력 2008-09-19 02:54수정 2009-09-24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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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초심으로 남은 소명 다할 것”

초기 후원금 年20억씩 급감…꽃동네 망한다 소문도

고통 준 사람 용서하지만 사랑하려면 시간 더 필요

“이제야 구름이 걷히고 안개도 비로소 사라진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27일 대법원에서 업무상 횡령과 사기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확정된 데 이어 최근 8년간을 끌어 온 인근 광산을 상대로 한 광업권 설정허가 및 채광인가 취소 행정 소송에서도 고등법원의 원심판결을 뒤집는 대법원의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낸 꽃동네 오웅진(64) 신부는 담담한 어조로 소감을 말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의 보금자리였던 꽃동네가 ‘비리의 온상’처럼 비치고 설립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오 신부가 ‘파렴치한 사기꾼’처럼 매도돼 온 혹독한 세월을 그는 묵묵히 견뎌냈다. 꽃동네를 옥죄던 송사에서 벗어났으나 인터뷰를 고사해 온 그가 한밤중 찾아간 기자에게 비로소 그간의 심경을 털어놨다.

2000년 10월 12일 충북 음성 지역 문화행사에 참석했던 오 신부는 우연히 군청 측이 꽃동네 인근에 광산을 허가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혹독한 ‘시련’의 시작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해당 행정기관에 이의신청을 내 지하수 및 환경보전을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행정소송을 내게 됐다.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던 2002년 5월 21일 경찰과 군청 직원들이 합동으로 꽃동네에 들이닥쳤다. 청와대에 오 신부에 대한 횡령 및 부동산 투기 의혹과 불법 산림훼손에 관한 진정서가 접수됐다는 것이었다.

경찰조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 났으나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아 꽃동네에 대한 계좌추적 등 전방위 내사를 시작했다. 2003년 1월 21일에는 한 인터넷 매체와 방송사에서 ‘오웅진 신부 34억 원 횡령 의혹’이라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꽃동네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고 오 신부는 곧바로 ‘죽일 놈’이 됐다.

“2002년 120억 원에 달했던 후원금이 다음 해 100억 원으로 떨어졌고 해마다 20억 원씩 더 떨어졌습니다.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던 회원이 15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급감했지요. ‘꽃동네가 망하고, 인근 주민들은 다 이주하게 된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4000여 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꽃동네는 ‘현상 유지’조차 힘겨워 졌다. 검찰은 꽃동네 수도자 등 300여 명의 참고인을 조사해 1만5000쪽 분량의 방대한 수사기록을 작성해 오 신부와 수사, 수녀, 주민, 환경운동가 등 5명을 업무상 횡령과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오 신부 등에 대한 1심 공판만 2년에 걸쳐 27회가 열렸고, 그는 그때마다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아야 했다.

8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꽃동네는 설립 32주년인 이달 8일 비로소 성당과 수도원, 수녀원 등 남녀 수도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려면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오 신부의 지론에 따라 그동안 300여 명의 꽃동네 수사와 수녀들은 가족들의 공간에 얹혀살거나 옥상의 조립식 가건물 등에서 생활해 왔다.

“수도자들에게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헌신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저 또한 1976년 전 재산 1300원으로 꽃동네를 시작할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제게 맡겨진 소명을 다할 것입니다. 제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지만 그들을 사랑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합니다.”

음성=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김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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