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일조각 사장구봉 한만년 선생 영전에

  • 입력 2004년 5월 4일 0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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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 한만년(久峰 韓萬年) 선배님 영전에 김중순 한국디지털대 총장

구봉 한만년 선배님의 부고를 받고 황망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육친을 잃은 마음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한만년 선배님은 내가 다닌 중앙학교(당시 중앙고보)의 14년 선배이셨기에 학교 다니는 동안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분과 가깝게 된 것은, 내 모교의 설립자이신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님의 업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인촌 선생님에 대한 책을 영문으로 출간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부터였다.

한 선배님은 인촌 선생님에 대한 일대기를 쓰는 것은 아직 정리가 잘 되지 않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한 학자가 심혈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내게 하신 조언은 “인촌 선생님과 함께 일하시던 분들 중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기억과 경험담을 정리하는 일이 우선이고, 그분에 관한 문헌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 다음 순서일 것이며, 마지막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인촌 선생님에 대한 책의 초고를 마쳤을 때 선배님은 직접 그 원고를 들고 미국에 가셔서 한미 양국에서 동시 출판하는 일을 추진하기도 하셨다. 그 책은 나중에 뉴욕주립대출판부에서 내게 됐고 한국어 번역판은 일조각(一潮閣)에서 출간했다.

인촌 일대기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선배님은 늘 “한국 사람들만 보는 한국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고, 특히 한국사를 해외에 제대로 알리는 일에 골몰하셨다. 그런 점에서 한국학 연구 성과는 일조각의 창립 이전에도 있었지만 진정으로 한국학이 국제사회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은 구봉 선배님의 역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배님은 한국학이 세계적인 이해를 얻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전문 학자들의 시야를 넘어서는 탁견을 갖고 계셨다. 일찍이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 영어판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한국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세계적인 교과서로 만든 점이나, 하버드대의 카터 K 에커트 교수 등을 필자로 확보해 ‘Korea, Old and New’를 미국의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출판인으로서 선배님의 사고와 행동반경은 한반도를 넘어서는 원대한 것이었다.

선배님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이 아니라 문화사업을 한 분이셨다. 평생 출판 외길을 걸으셨지만 책을 만든다는 것은 애당초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마음을 비우셨다. 그런 선배님의 뜻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책을 안 팔기로 결심한 양반이 아니요”라고 안타까움에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선배님의 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출판인으로서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내는 것에 만족한다네.”

미국에 살던 내가 잠시 한국을 방문할 때면 늘 한 선배님과 조촐한 반일본식 지하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했다. 먹고 입는 일에 관한 한 세상 누구보다 소탈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자신의 품위를 잃는 법이 없었던 진정한 신사, 구봉. 이제 홀연히 떠나신 선배님과 어디서 다시 선후배의 정을 나눈다는 말인가. 지금부터 나는 일조각 사장실이 있던 ‘공평동’ 길을 혼자서 걷게 된 것이다.

김중순 한국디지털대 총장

▼한만년씨 국민훈장 모란장▼

지난달 30일 별세한 한만년(韓萬年) 전 일조각 사장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은 3일 오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훈장을 전수했다.

고인은 1953년 도서출판 일조각을 창립해 한국학 관련 학술도서를 출판해 왔으며 대한출판문화협회장 등을 지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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