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트럼프에 ‘동시행동’ 요구… 비핵화 조치 진전된 카드 주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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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일 남북 평양정상회담]“2020년까지” 비핵화 시간표 첫 제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을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과 1시간 40분가량의 회동에서 내놓은 비핵화 메시지의 핵심은 미국의 ‘동시 행동’이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 등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였으니, 이제 미국이 종전선언 등의 조치로 화답해 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변함없다”며 최근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유화 제스처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번 회동에서도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 미국이 원하고 있는 북핵 리스트 공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비핵화의 ‘말’만 있었을 뿐 ‘행동’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가 열리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간 ‘수석 협상가’로 나서 달라고 요청했고, 청와대가 북-미 간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그 내용과 반응에 비핵화 협상의 흐름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처음으로 비핵화 시간표 언급한 김정은

청와대에 따르면 특사단은 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낮 12시 10분까지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과 만났다. 정 실장은 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핵화와 관련된 김정은의 발언을 이례적으로 자세하게 공개했다.

정 실장에 따르면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에 북-미 간 70년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0년 말까지 비핵화 실현 의지를 내비친 것인데, 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시점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김정은은 “풍계리 (핵실험장은) 갱도 3분의 2가 완전히 붕락해서 핵실험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며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폐쇄)도 향후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완전히 중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실천해 왔는데, 이런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실장도 “이런 조치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좀 인색한 데 따른 어려움을 (김정은이) 토로했다”고 설명했다. “시간 벌기용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김정은이 특사단을 통해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 ‘동시 행동’ 꺼냈지만 새 협상카드는 없어
트럼프 “생큐 김정은” 트윗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분명히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곧 그것(약속)을 함께 이행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트위터 캡처
트럼프 “생큐 김정은” 트윗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트위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분명히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곧 그것(약속)을 함께 이행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트위터 캡처
그러면서 김정은은 ‘진짜 의도’를 공개했다. 김정은은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동시 행동 원칙이 준수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할 용의와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나서면 미국이 원하는 핵 리스트를 줄지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어 김정은은 “종전선언을 하면 ‘한미 동맹은 약화된다’ 또는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 하는 것들은 종전선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 없이 종전선언이 먼저 이뤄질 경우 “한반도가 김정은의 의도대로 끌려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김정은이 직접 해명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 역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위해 종전선언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 실장은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은 관련국 간에 신뢰를 쌓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고, 북한도 이런 우리의 판단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종전선언이 있어야 북한은 확실한 체제 보장을 받았다고 여기고, 비로소 후속 비핵화 조치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백악관이 바라는 북핵 리스트, 핵심 핵 시설의 폐기, 국제사회의 검증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이미 발표한 기존의 조치들만 강조했다.

○ 靑 통해 주고받은 워싱턴-평양 메시지가 관건

결국 앞으로의 상황은 청와대를 가운데 두고 워싱턴과 평양이 주고받은 메시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4일 한미 정상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메시지가 있었고, 그걸 정 실장이 (김정은에게) 전달했다”며 “오늘(6일) 오후 8시 정 실장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를 하며 김 위원장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무산되는 등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양측 모두 대화의 끈은 여전히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 서로에게 ‘행동으로 보이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북한은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대화 테이블만 마련돼도 추가 행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동시행동 요구#비핵화 조치 진전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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