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탄광명 빠졌는데도 못 걸러내… 관세청 검증시스템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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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석탄 밀반입 의혹]샤이닝리치호 ‘러시아산 위조’ 확인

샤이닝리치호를 통해 국내로 반입된 석탄의 원산지 증명서가 조작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금수품인 북한산 석탄의 밀거래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관세청이 10일 “러시아산으로 수입된 일부 석탄은 북한산이라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수입업자를 기소 의견(관세법 위반)으로 송치하기로 하면서 수입, 유통 단계는 물론 세관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원산지 조작을 걸러낼 검증 시스템이 사실상 마비 상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치권에선 “북한산 의심 사례 9건 외에도 국내에 수입된 북한산 석탄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당국의 ‘미필적 고의’까지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 러시아 원산지 증명서 위조 정황

자유한국당 북한산석탄수입의혹규명특위 소속 정유섭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북 포항 소재의 자원 수입업체 H사는 러시아의 탄광업체로부터 무연탄 5119t 수입 계약을 하면서 원산지 증명서를 받았다. 샤이닝리치호가 동해항으로 싣고 들어오기 전 세관에 제출한 원산지 증명서다.

이 서류엔 러시아 연방이 발행한 증명서 일련번호는 물론 채굴회사의 이름과 주소까지 기재돼 있다. 특히 이를 증명하는 기관으로 러시아 상공회의소의 도장도 찍혀 있다. 하지만 러시아 상공회의소가 제공하는 원산지 검색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샤이닝리치호가 국내 세관에 제출한 증명서는 ‘검색 불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공회의소가 발급한 증명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H사가 지난해 북한산 석탄을 반입한 것으로 지목된 또 다른 선박인 진룽호를 통해 무연탄을 수입했을 때 관세청에 제출된 원산지 증명서는 이 사이트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두 증명서는 육안으로 봐도 차이가 적지 않다. 진룽호가 싣고 온 석탄의 원산지 증명서엔 회사명과 함께 이 석탄이 채굴된 탄광과 운송 선박명이 찍혀 있다. 하지만 조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샤이닝리치호의 원산지 증명서에는 탄광명과 선박명이 빠져 있다.

하지만 국내 입항과 하역 과정에서 이 조작된 증명서는 걸러지지 않았다. 문제의 석탄을 수입한 남동발전은 “주는 서류마다 일일이 검사를 할 순 없다”며 “관세청이 특정 서류가 위조됐다고 통보하지 않는 한 추가 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의원실에 설명했다. 반면 관세청은 “우범 국가 경유, 우범 수입자가 아닌 다음에야 서류가 갖춰졌는지 확인되면 통과된다. 사후 심사를 철저히 하는 방식으로 검증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 원산지 검증 절차는 무방비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을 수사해온 세관 당국은 국내에 수입된 일부 석탄이 북한산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여러 수입업체의 법 위반 사실도 확인했다. 세관 당국은 10일 이 같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여러 수입업체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예정이다.

관세청은 성분 분석을 통해서는 석탄의 산지를 가려내진 못했으나, 북한산 의심 석탄의 러시아 내 통관 여부 확인 등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산 석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세청은 당초 미국이 통보한 북한산 석탄 반입 의심 사건 외에도 자체 조사를 통해 위반 사례를 추가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산지 증명서 조작에 대한 진위 확인과 같은 기본적인 절차를 소홀히 한 정황이 나타난 만큼 이번에 확인된 사례 외에도 북한산 석탄이 추가로 반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 특위는 “육안으로 봐도 이상한 원산지 증명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입한 발전사와 관세 당국이 묵인 내지는 방조한 게 아닌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우열 dnsp@donga.com·장관석 / 세종=김준일 기자
#선박#탄광명#관세청 검증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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