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전 마지막 인터뷰서 “지도자는 욕먹을 각오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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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1926~2018]마지막까지 정치적 메시지

박영옥 여사 영정 앞의 JP… 국립묘지 마다하고 “아내 옆에 묻히겠다” 2015년 2월 23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3년 4개월 뒤 같은 장례식장 30호실에 김 전 총리의 빈소가 차려졌다. 국립현충원을 마다하고 충남 부여군 가족묘원의 
부인 옆에 나란히 안장될 예정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박영옥 여사 영정 앞의 JP… 국립묘지 마다하고 “아내 옆에 묻히겠다” 2015년 2월 23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3년 4개월 뒤 같은 장례식장 30호실에 김 전 총리의 빈소가 차려졌다. 국립현충원을 마다하고 충남 부여군 가족묘원의 부인 옆에 나란히 안장될 예정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4월 하순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시민공원 내 세빛섬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오랜만에 측근인 이양희 전 자유민주연합 의원 등을 만나 식사를 했다. 오랜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던 JP는 마늘빵을 다 비우고 “빵이 참 맛있다. 좀 싸줄 수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이 전 의원은 “기력이 많이 떨어져 왼손으로도 밥을 먹기 힘들어했지만 나라 걱정하는 말씀은 여전했다”고 전했다. JP는 2008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른손을 잘 쓰지 못했다. 한 측근은 “한강에서의 식사가 사실상 제대로 된 마지막 식사였고 곧 말을 못할 정도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고 말했다.

○ 5월 들어 건강 급속 악화

40여 년 JP를 보좌해 온 김상윤 특보의 손발이 5월 들어 바빠졌다. JP의 건강 상태를 묻는 측근들의 전화도 잦아졌고 병원을 오가는 일도 많아졌다. JP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보름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뒤 7일 퇴원해 자택으로 돌아갔다. 건강을 회복해서 퇴원한 것이 아닌 사실상의 ‘마지막 귀가’였던 셈이다.

김 특보에게 “JP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은 22일 급하게 서울 중구 청구동 자택을 방문했다. 정 의원은 “의식은 있었는데 ‘정우택이 왔습니다’라고 외치니 눈을 반쯤 뜨시고 살짝 손가락을 까딱 하셨다. 그 외엔 다른 대화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측근은 “연명을 하려면 목에 관을 삽입해서 음식물을 주사해야 하는데 가족이나 본인도 그런 식의 연명치료는 원하지 않았다. 퇴원 후 한 번 병원에 다녀온 뒤 대부분 자택에서 쉬셨다”고 전했다. 23일 아침 JP는 장녀 예리 씨(66)와 아들 진 씨(57)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 JP의 마지막 메시지 “지도자는 욕먹을 각오해야”

앞서 4월 18일 JP는 청구동 자택에서 지방선거 등 정치현안에 대해 동아일보와 인터뷰(4월 23일자)를 했다. 생전 언론과의 마지막 공식 인터뷰였다. JP는 여전히 국내외 정치 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총기는 여전했다. 그가 전하려던 핵심 키워드는 북한과 경제. JP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척은 해도 결코 포기할 리 없다. 정부가 북한의 이런 의도를 알면서도 미국을 끌어들이고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과정에 들러리나 서지 않을지 걱정이다”라고 했다. “북한이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것인데 여기에 넘어가선 안 된다. 김정은이 속으로 우리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경제에 대해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해서 (한국 경제가) 여기까지 왔는데 앞날이 어둡다. 이 상태가 오래갈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는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에 빠져들 것을 미리 경고하기도 했다.

JP는 스스로 거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전·현직 의원들을 만나 소통하며 통합과 화합을 강조했다. 정우택 의원은 “3월에 JP와 식사를 같이했는데, 툭툭 던지듯 ‘정치가 이래선 안 된다, 한국당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고 걱정하셨다”고 전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선 보수정당의 분열을 상당히 비판했고 보수정당, 나아가 여야 정치의 화합, 통합을 자주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JP의 정치 문하생으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문상객을 보니까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모셨던 분들이 JP의 별세에 더 마음을 쓰는 것 같다. 한국 현대사에서 첫 수평적 정권 교체 때의 JP의 역할과 기여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양희 전 의원은 “민주화의 완성은 ‘양김’만이 한 것이 아니라 ‘3김’이 한 것이다. JP는 사실 스스로 대통령이 되려 한 게 아니라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DJ의 집권은 필연이고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강조했다.

○ 부인과 같은 빈소, 같은 땅에서 영면

2015년 별세한 부인 박영옥 여사의 3주기를 즈음한 올해 2월, JP는 건강을 우려하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부인의 산소에 올라가 한동안 있다가 내려왔다. 당시 옆에 있던 한 측근은 “산에 올라갈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아니었는데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부인을 보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JP의 빈소 역시 박 여사가 2015년 별세했을 때 조문객을 맞이했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다.

JP 본인의 뜻대로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충남 부여군 선산의 부인 옆에 묻힌다. JP는 회고록에 “국무총리를 두 번 했다고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내 고향 부여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미 유택을 마련해 두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누워있는 양지바른 그곳에 함께 누울 생각이다”라고 썼다.

최우열 dnsp@donga.com·박효목 기자
#김종필#정치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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