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한 수에 사랑, 한 수에 그리움… 세계적 공용어 ‘시조’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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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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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시조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정진희 씨
정진희 씨
 시조교실 수업에서 들은 시조 한 편이 오늘의 당선소감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김재현 선생님의 ‘풍경’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글쓰기를 그만두겠다고 절망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요. 누구나 좌절할 수 있다며, 그 좌절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도록 이끌어 주신, 한 명에게라도 시조를 가르치시고자 하루에 7시간 소요되는 먼 길을 달려오시는 양점숙 선생님의 열정은 시조를 모르던 제게 빛과 같았습니다. 수업은 언제나 흥미진진했습니다. 시조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시조는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걸, 나이가 많은 사람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도 쓸 수 있다는 걸 이렇게 알게 됐습니다.

 모국어를 배우고 익히고 말하고 쓴 지 60년이 다 돼 가는데, 나는 아직 무엇을 쓰고 어떻게 말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우리글이 가지고 있는 그 무궁무진한 세계를 우리 고유의 정형시 ‘시조’에 맛깔스럽게 담아내고 싶습니다.

 죽었을까 들여다본 겨울나무가 새파랗게 깨어나 솜털 보송보송한 새잎을 내는 것을 봅니다. 신춘(新春)이란 그렇게 사그라졌던 것을 다시 살려 숨쉬게 하는 뜻은 아닐까요?

 꿈을 꾸었습니다. 옥동자를 낳았고 좋은 황토 땅을 보았습니다. 로또 사야 한다는데 로또보다 더 행복한 선물을 제게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더욱 더 진심을 다하라는 채찍으로 받고 첫 마음을 잃지 않겠습니다. 이 시대의 든든한 버팀목인 민족신문 동아일보에서의 당선소식은 너무나 값집니다. 90여 년 신춘문예의 기록에 제 이름도 올려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시조 한 수로 아침 인사를 나누고, 시조 한 수로 사랑의 말을 나누고, 시조 한 수로 그리움을 남긴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시조가 세계적인 공용어가 되기를 감히 꿈꾸어 봅니다.

 △1959년 전북 익산 출생 △원광대 경영학과 석사 △익산농협 북일지점장
 
이근배 씨(왼쪽)와 이우걸 씨.
이근배 씨(왼쪽)와 이우걸 씨.

 
▼ 개성적 시각으로 푼 시적 미학 이미지 빚어내는 능력 뛰어나


[심사평]시조

 신춘문예 응모작을 읽는 작업은 보물찾기와 다름없다. 좀 더 유형화되지 않은 작품, 건강한 시 정신, 깊은 사유가 담긴 심미적 감각, 그리고 내일을 능동적으로 열어 나갈 수 있는 활력 등을 갖춘 작품을 만났으면 하는 꿈을 늘 꾼다.

 이런 간절한 희망에 응답하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으로는 ‘그 대를 안고’, ‘다시 와온에서’, ‘천마도를 그리다’, ‘화성 들어올리다’, ‘산수유 기차’ 그리고 ‘자반고등어’였다.

  ‘그 대를 안고’는 유일한 단시조였다. 성공한 단시조야말로 시조가 닿아야 할 종가(宗家)다. 그러나 신춘문예와 같은 경쟁장에선 함께 응모하는 다른 작품과 더불어 충분한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와온에서’는 오래 노력해 온 시인의 경륜이 읽히지만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마도를 그리다’는 역사적 소재를 자기 시각으로 시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지만 시적 담론을 구축해 내는 형상력이 부족해 보였다. ‘화성 들어올리다’는 대상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였지만 자기만의 개성적인 시각이 안 보였다. ‘산수유 기차’는 쉽게 읽히는 발랄한 작품이지만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자반고등어’에 뜻이 모아졌다. 시적 미학을 빚어내는 자기만의 시선이 있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개성적 시각, 이미지를 빚어내는 능력 등 전반적인 면에서 신뢰를 주었다. 축하와 아울러 대성을 빈다.
  
이근배·이우걸 시조시인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시조#정진희#자반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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