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북유럽 예술의 고장 노르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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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 배경된 오슬로 다리… 돌기둥에 121명 모습 새겨넣은
비겔란 공원 ‘모놀리텐’도 발길끌어… 백야의 카페서 즐기는 맥주한잔
겨울왕국의 여름이 주는 보너스

과거 한자동맹 상인들의 무역 거점이었던 베르겐의 브뤼겐 거리는 관광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베르겐의 아이콘인 브뤼겐 목조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이들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는 관광객들이 넘치는 이곳은 밤늦도록 북적인다. 베르겐관광청 제공
과거 한자동맹 상인들의 무역 거점이었던 베르겐의 브뤼겐 거리는 관광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베르겐의 아이콘인 브뤼겐 목조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이들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는 관광객들이 넘치는 이곳은 밤늦도록 북적인다. 베르겐관광청 제공
낯설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 속에서나 봤던 광경이다. 긴 세월 동안 빙하가 조금씩 깎아내 만들어낸 피오르(fjord)와 한여름에도 녹지 않고 몇만 년간 자리를 지켜온 만년설(萬年雪)이 눈앞에 펼쳐졌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배경으로 나온 노르웨이선 말 그대로 ‘이국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 나왔다. 오로라, 백야, 빙하 등 한국에선 눈에 담을 수 없는 자연 현상이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게 했다.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곳. 자연과의 교감도 저절로 이뤄진다. 노르웨이에서 영감을 얻어간 예술가들도 그런 체험을 했을 것이다. ‘절규’로 유명한 세계적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인간의 내면을 강렬한 방식으로 표현했고, 노르웨이 대표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는 북유럽의 서정을 애잔한 음악에 담아냈다.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도 노르웨이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뭉크와 그리그를 키운 노르웨이

이름이 같은 두 명의 ‘에드바르’는 노르웨이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술가들이다. 뭉크의 초상화는 노르웨이 최고권액인 1000크로네(약 17만 원) 지폐에 들어가 있고, 그리그도 1990년대 통용된 500크로네 지폐의 주인공이었다.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인 뭉크의 흔적은 노르웨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작인 ‘절규’는 수도 오슬로의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뭉크는 4개 버전의 ‘절규’를 남겼다. 이 중 하나가 2012년 미국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역대 최고가인 1억1992만 달러(약 1228억 원)에 낙찰돼 그 ‘진가’를 선보인 적이 있다.

오슬로 시내 에케베르크 다리는 ‘절규’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이 다리엔 절규를 소개하는 동판이 붙어 있다. 동판 옆에선 작품 속 주인공처럼 놀란 표정으로 손을 얼굴에 대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페르귄트’ ‘피아노 협주곡 a단조’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그리그의 자취는 베르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그가 말년에 22년간 사용했던 여름 별장이 기념관으로 꾸며졌다. 스위스풍의 목조 건물 내부엔 그리그가 생전에 쓰던 물건들과 초상화, 각종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생가에서 조용한 오솔길로 잠시 내려가면 그리그의 작곡실이 나온다. 그의 아내 니나는 그리그가 생전에 쓰던 물건을 그대로 배치했다. 단신(153cm)이었던 그리그가 평소 피아노를 칠 때 의자 위에 놓고 깔고 앉았던 두툼한 악보집까지 가져다놓는 세심함이 엿보인다. 그리그는 생전에 이 작곡실을 오래 비울 때면 책상 위에 침입자를 위한 메모를 남겼다. “제발 악보는 남겨주세요. 악보는 그리그 말고는 누구에게도 가치가 없습니다.”

기념관으로도 꾸민 고즈넉한 콘서트홀에서는 9월 말까지 매일 30분 정도 그리그의 음악을 들려주는 ‘런치 콘서트’가 열린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1869∼1943)의 이름을 딴 비겔란 조각공원은 오슬로의 명소 중 하나다. 청동과 화강암 등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조각 작품 200여 점이 드넓은 공원과 어우러져 있다. 특히 멀리서 보면 돌기둥처럼 보이는 ‘모놀리텐’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일어난다. 높이가 17m에 이르는 거대함도 놀랍지만 기둥에다 나체의 남녀 121명이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는 모습을 새겨 넣은 정성도 대단하다. 조각가 세 사람이 14년에 걸쳐 완성했다.

‘겨울왕국’의 배경 베르겐

노르웨이의 대표적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여름 별장 내부(왼쪽 사진)와 세계적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노르웨이의 아이콘이다. 그리그박물관·뭉크미술관 제공
노르웨이의 대표적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여름 별장 내부(왼쪽 사진)와 세계적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노르웨이의 아이콘이다. 그리그박물관·뭉크미술관 제공
베르겐 토박이에게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물으면 이들은 ‘노르웨이인’이라는 대답 대신 ‘베르겐인’이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베르겐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피오르와 산으로 둘러싸인 베르겐은 ‘겨울왕국’의 배경이 됐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인구 24만 명으로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은 12, 13세기엔 노르웨이 수도였고 19세기까지만 해도 북유럽 최대 도시였다. 북해에서 나는 대구를 주축으로 한 어업과 무역이 베르겐의 번영을 이끌었다. 무역을 위해 14세기 중반부터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상인들이 베르겐에 교역 기지를 지어 베르겐을 활동의 중심지로 삼았다. 이때 지은 교역 기지 건물이 베르겐의 브뤼겐 목조 건물들이다. 브뤼겐은 부두라는 뜻이다.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얹은 중세풍의 나무 건물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는데, 베르겐 관광코스에서 빼놓고 지나가기 어려운 상징적인 건물이 됐다. 교역이 한창 이뤄질 당시에는 독일 상인들이 사무실과 생선 창고 등으로 썼다. 처음엔 직사각형이었을 출입문이 기울어져 평행사변형이 돼 버린 비뚤배뚤한 건물을 보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목조 건물인 탓에 처음 지어진 건물들은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됐고, 그때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똑같이 복원됐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베르겐 시에서 매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지·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과거 무역의 중심지는 지금 관광의 핵심으로 변모했다. 무역을 위해 세워졌던 이 건물들은 지금 카페와 레스토랑, 술집 등으로 변했다. 선원과 상인들로 흥청거리던 이곳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재촉한다. 베르겐의 아이콘인 이 목조 건물들 앞에서는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과 거리의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로 북적댄다. 여름으로 들어선 요즘엔 오후 9시가 넘어도 대낮처럼 환해 단체로 낮술을 먹는 것 같은 어색함도 느껴진다. 반대편 부두의 어시장에선 연어, 바닷가재, 새우, 고래 고기 등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베르겐 브뤼겐의 뒷산인 플뢰엔 산을 오르면 정상의 전망대에서 베르겐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론 굽이굽이 피오르가 펼쳐지고, 바로 아래엔 북유럽 1000년 고도(古都)의 이국적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시가지에서 급경사를 오르는 전철인 ‘플뢰이바넨’을 타면 5분이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산비탈에 지어진 주택가를 지나 전나무와 자작나무 숲길에 난 트레킹 코스를 걸을 수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40분쯤 굽이굽이 걸으면 정상에 오른다.

‘피오르의 심장’ 플롬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송네 피오르의 지류인 에울란 피오르의 출발점인 플롬의 모습.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송네 피오르의 지류인 에울란 피오르의 출발점인 플롬의 모습.
전원 마을인 플롬은 피오르나 폭포, 전망대 등을 보기 위해 들르는 관문 같은 곳이다. 하지만 경유지라며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쉽다.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이 에워싸고 있고, 떨어지는 한 줄기 폭포는 그림 같다. 파도가 없어 잔잔하기만 한 피오르의 수면엔 바위산이 그대로 비친다. 고개를 숙이면 산꼭대기가 물에 비친 모습이 보인다. 이곳엔 시야를 방해하는 부유물 따윈 없다. 눈동자가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플롬에선 산악열차인 ‘플롬스바나’를 탈 수 있다. 플롬과 뮈르달을 잇는 20km 구간을 달리는 이 열차는 까마득한 협곡과 20여 개의 터널을 통과한다. 최대 55도에 이르는 경사를 오르기도 하는데, 험준한 산악 지역과 협곡, 폭포 등을 지나며 빼어난 자연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매거진은 이 루트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로 꼽았다.

플롬은 에울란 피오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지류는 길이 205k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송네 피오르와 만난다. 플롬에서 쾌속 보트를 타고 2시간여 동안 피오르를 둘러보는 ‘피오르 사파리’를 할 수 있다. 피오르 사파리는 작은 배를 이용한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폭포가 수면과 부딪혀 튀는 물방울을 얼굴에 맞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피오르에 사는 물개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 배를 세우고 구경할 시간을 갖기도 하고, 육로로는 접근할 방법이 없는 바위산 중턱에 세워진 외딴 집 등 주변 관광 명소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현지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넛셸’이라는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피오르 등 명소만 골라 둘러볼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고를 수 있다. 대표적인 상품은 ‘노르웨이 인 어 넛셸’이다. 9시간이 걸리는 이 상품은 베르겐을 출발해 기차와 버스, 보트, 산악열차 등을 갈아타며 네뢰위 피오르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요금은 성인 1명에 1145크로네. 송네 피오르와 에울란 피오르 등을 둘러보는 10시간짜리 ‘송네 피오르 인 어 넛셸’은 1340크로네다. 당일치기부터 4일짜리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코스가 준비돼 있다. www.fjordtours.com

피오르는 유람선을 타고 감상할 수도 있다. 베르겐에서 출발해 유람선으로 1박 2일을 달리면 올레순에 닿는데, 여기서 육로로 예이랑에르 피오르를 둘러보는 코스도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Travel info

항공편=6월과 7월엔 대한항공의 인천∼오슬로 직항 전세기가 4회 운항한다. 한진관광에서 이를 이용해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를 함께 둘러보는 7박 9일 여행 상품을 내놨다. 이 시즌 이외에는 직항편이 없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물가=노르웨이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만318달러로 세계 2위. 소득 수준이 높은 만큼 물가가 매우 높다. 햄버거로 한 끼를 때우려 해도 2만 원 정도 든다. 슈퍼마켓의 500mL짜리 생수 한 병이 4000원 정도다. 현지인들은 흔히 수돗물을 그냥 마시기 때문에 빈 병을 가지고 다니면 식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현지 화폐 1크로네(NOK)는 약 170원.

시내 관광=‘오슬로 패스’ ‘베르겐 카드’ 등을 구입하면 각 도시를 저렴하게 구경할 수 있다. 트램, 버스 등 교통수단은 물론이고 박물관, 미술관 등을 정해진 시간 동안 무료 또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관광안내소 등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24시간 동안 성인이 이용할 수 있는 오슬로 패스는 290크로네, 베르겐 카드는 200크로네.

날씨=베르겐은 1년 365일 중 275일 비가 올 정도로 비가 잦다. 여름의 산악지역에는 긴 소매 옷을 가져가는 게 좋다.

오슬로·베르겐·플롬=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겨울왕국#노르웨이#뭉크#그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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