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어 수출에 ‘날개’… 보호무역-엔저 장벽 넘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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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무역 5대 강국을 향해]<上>성장엔진 출력을 높여라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현대·기아자동차 전용부두. 수천 대의 수출용 차량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평택=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현대·기아자동차 전용부두. 수천 대의 수출용 차량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평택=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부두. 찬 바람이 부는 항만에는 길이가 200m에 이르는 대형 선박 3척이 정박해 있었다.

야적장에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열을 지어 서 있던 차량들이 하나 둘 빠르게 선박 안으로 들어갔다. 차량은 시속 80km로 움직였다. 이곳 근로자들에게 시간은 금이다. 평택항에서 선적을 마치면 목포항, 울산항 등으로 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다음 일정까지 지연되기 때문이다. 다른 쪽에서는 속속 도착한 트랜스포터(차량을 운반하는 차량)가 번쩍이는 새 자동차를 내려놓았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생산한 ‘쏘나타’와 ‘그랜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만든 ‘K5’ ‘K7’이다. 김영상 현대차 수출선적팀 부장은 “최근에는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해외 법인과 딜러들의 주문이 몰려 출고 차량이 늘었다”면서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입·출항이 쉬운 오늘 같은 날에는 특히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며 바쁘게 움직였다.

평택항은 수출하는 자동차뿐 아니라 BMW 벤츠 아우디 등 수입 차량이 국내에 첫발을 내딛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통해 수입된 차량은 2009년 2만2000여 대에서 지난해 13만3000여 대로 크게 늘었다. 이에 힘입어 평택항은 2010년부터 3년 연속 전국 자동차 처리 물량 1위를 유지하며 자동차 수출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무역 5대 강국을 향한 분주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인 셈이다.

○ 수출은 경제위기 속 성장엔진

현대차와 기아차가 주축인 한국의 자동차 수출은 최근 완성차 생산이 정상화되고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현대차는 1976년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실어 보내면서 수출을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올해 상반기(1∼6월)에만 205만8000대를 넘어섰다.

정보기술(IT) 산업도 수출의 주역이다. 미국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다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미국, 대만, 일본 업체와의 ‘치킨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는 원화가치 상승 등 어려운 여건에서 전체 수출을 견인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회사들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제품 수출에 앞장섰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달성이 확실시되는 배경에는 이 기업들의 노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일각에서는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수출이 우리 경제를 이끌 핵심 성장엔진이라고 강조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8월 발표한 보고서 ‘2012년 수출, 우리 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나’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율은 51.0%로 내수 부문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수출은 5479억 달러로 2011년보다 1.3% 줄어들었지만 수출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수출은 지난해 경제성장률 2.0% 가운데 절반을 담당했다. 특히 수출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내수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2009년에도 172.1%의 경제성장 기여율을 보이며 국가 경제를 살려냈다.

일자리 창출에 수출이 기여한 몫도 크다. 지난해 수출의 제조업 취업 유발인원은 전체 제조업 취업자의 63.8%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이 서비스산업보다 고용의 질이 높은 것을 감안할 때 수출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지상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수출은 고용률을 높이고 세수(稅收)와 부가가치를 늘리는 등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장규모 작은 한국, 수출 더 늘려야”

최근에는 수출의 의미도 재조명되고 있다. 기업들이 경제 발전을 이끄는 과정에서 시도하는 ‘파괴적 혁신’은 시장의 충격을 동반하는데, 수출은 이를 최소화하면서 부가가치를 늘린다는 것이다.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최근 삼성그룹 사장단 강연에서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서 혁신이 불러올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수출을 많이 하는 것뿐”이라고 진단했다. 예컨대 대기업이 식음료 분야에서 기술혁신을 할 경우 골목상권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수출 제조업이 추구하는 혁신은 내수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무역 5대 강국으로 향하는 길에는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엔화가치의 하락은 국제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자동차, 철강, 전자 등 국내 주요 수출업체에 부담이 된다. 자국의 제조업을 지키기 위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발동도 한국 기업들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소비 위축도 변수다.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교수는 “대(對)중국 수출에서 지금까지 경험해온 호황의 꿈을 깨야 한다”며 “자동차, 스마트폰 등 현재 잘 팔리는 제품 대신에 새롭게 중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상품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 확대와 함께 ‘건전한 수입’도 늘릴 필요가 있다. 최근의 무역수지 흑자 행진을 기업들이 시설투자 기피로 자본재 수입을 줄인 데 따른 ‘불황형 흑자’로 보는 분석도 적지 않다. 각종 규제에 치인 기업투자 위축이 무역 5강으로 가는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일각에서는 수출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하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무역규모를 더욱 확대할 수 있다”며 “정부도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박창규 kyu@donga.com / 김용석 기자
#무역 5대 강국#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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