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해운대 밤하늘 반짝이는 은하수, 내 가슴으로 쏟아져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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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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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人의 현재를 있게 해준 인생의 전환점, 그 순간은

‘어릴 적 부산 해운대 해변에서 바라본 깜깜한 하늘, 반짝이는 은하수, 검게 출렁이는 바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중성미자(neutrino)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김수봉 서울대 교수(52)를 물리천문학의 세계로 인도한 순간이다. 김 교수는 “이때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호기심을 느꼈고 우주를 이해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자극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을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했던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이처럼 우연하게 찾아왔다. 적지 않은 100인은 ‘내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순간을 마냥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 우연하게 또는 엉뚱하게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56)는 우연하게 결정적인 순간을 만났다. 송 교수가 29세이던 1985년 미국의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에 들렀을 때였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첫 미국 유학생이었던 유길준의 관복이 전시돼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과 비슷한 길을 이미 100년 전에 걸어간 학자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유길준은 당시의 나와 같은 나이였던 1884년 미국에서 공부했고 그곳에서 조선을 바라봤다”며 “(나도 유길준처럼)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재들과 경쟁하며 한국을 문명화된 국가, 인간적 양식을 갖춘 선진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비장한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때부터 세계의 한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한국’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맞닿을 수 있는 ‘큰 구도’가 무엇인지를 찾는 길에 나섰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로 용감하게 뛰어든 100인도 있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작가 김영현 씨(46·여)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금융경제 관련 잡지사에서 일하다 뛰쳐나와 당시 MBC방송문화원(현 MBC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김 씨는 이 순간을 “순수한 나의 의지로, 나의 적성을 찾아가는 길 위에, 나를 올려놓은 날”로 잊지 않고 있다.

보건의료 경영정보시스템(MIS)의 일인자로 꼽히는 이태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54)에게 잊지 못할 순간은 1980년대 후반 무작정 300만 원을 대출받아 조립 컴퓨터 한 세트를 구입했던 때다. 그는 키보드의 ‘a’ 버튼을 치자 모니터에 ‘a’가 뜨는 걸 보고 신기해하다 컴퓨터를 사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며 “그래도 어떤 계기란 게 나타날 것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삶을 계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데니스 홍 미국 버지니아텍 기계공학과 교수(41)는 일곱 살 때 극장에서 영화 ‘스타워즈’를 보며 느낀 가슴 뛰는 흥분을 잊지 못했다. 당시 그는 스타워즈에서 멋을 뽐내는 로봇들의 매력에 매료됐다. 홍 교수는 “그날 극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런 생각이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교실 밖 세계에 매료됐을 때


문화·예술 분야 100인은 평범했던 학창시절, 교실 밖의 세계에서 운명을 만났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인기가 치솟은 탤런트 김수현 씨(24)는 고등학교 때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 속 수다스러운 요정 ‘퍼크’ 역을 맡으면서 연기의 꿈을 키웠다. 김 씨는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는데 앞이 안 보이고 박수소리만 들렸다”며 “그때의 희열로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성악가의 반열에 올라선 연광철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47)는 17세 때 충주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교내 음악경연대회에서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그는 “당시 음악수업도, 음악교사도 없던 학교에서 누구의 발상으로 그런 경연대회가 열렸을까, 또 누가 심사를 해서 나에게 1등을 주었을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에 이색적으로 등장한 ‘만화 대자보’, 그 앞에 신기하다는 듯 몰려든 대학생들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이 풍경을 지켜보는 나.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만화가 강풀(본명 강도영·38) 씨가 잊지 않고 있는 순간이다. 강 씨는 대학 때 총학생회 홍보부에서 활동하며 학내 사안에 무심한 학생들의 눈을 붙잡기 위해 만화로 대자보를 그렸다. 그는 “내 만화를 누군가가 보고 반응한다는 것을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다”며 “이때 감동을 받고 만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련 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를 잡은 100인도 있다. 강석진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51)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축구선수를 꿈꿨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정말 밥 먹고 나면 운동장만 뛰었던 ‘축구 꿈나무’였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 벤치만 지켜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큰 절망에 빠졌다”며 “내 마음을 지배했던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감, 뼈저린 절망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스스로 자랑스럽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한국을 빛낼 100인#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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