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정치권 ‘사법권력 견제론’ 꿈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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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참고인 강제구인제 관철할 것”
헌재 “위헌요소 있는 판결 심판해야”

21일 서울중앙지법의 A 부장판사는 이용훈 대법원장과 김준규 검찰총장의 사진이 같은 크기로 나란히 실린 한 석간신문을 펼쳐 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 수장을 대통령도 아닌 검찰총장과 대등하게 놓고 법-검 갈등의 한 축으로 표현한 것은 비상식적 행위”라며 “이 사진 한 장은 현재 법원이 직면한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성적을 바탕으로 선발된 한국 법관들은 세계 어느 법관보다도 자긍심이 강한 집단으로 꼽힌다. 대륙법 계통의 ‘법관 순혈주의’가 면면히 흐르면서 그들만의 리그는 굳건한 듯 보였다. 하지만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조금씩 흔들리면서 판사들에게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 사건 이후 국민이 법원을 보는 시각은 몰라보게 싸늘해졌다. 여기에 최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폭력 사건 무죄선고 등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정치권까지 나서 법원 개혁을 압박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과 정치권에서는 ‘사법권력 견제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사법부가 정권에 휘둘렸기 때문에 언론과 변협이 사법부를 지지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워진 사법부가 스스로 권력화되면서 사회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이후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재판 원칙을 강조하면서 법원이 사법시스템에 대한 주도권을 확실히 쥐게 됐다”며 “일부 법관은 강화된 사법부의 권한을 법관 편의주의로 악용하고 자의적인 법리해석을 내놔 불신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기회에 법원을 확실히 견제하기 위해 숙원사업이었던 형사소송법 개정을 연내에 관철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내부비리나 부패범죄를 신고하면 처벌을 줄여주는 ‘면책조건부 진술제’를 비롯해 거짓말을 하는 참고인을 처벌하는 규정, 중요 참고인을 강제로 부를 수 있는 중요 참고인 구인제 등이 골자다. 여기에 헌법재판소까지 법원의 판결에 위헌 요소가 있으면 헌재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재판소원제’를 도입하자고 나섰다. 법원은 사실상 ‘4심제 도입’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여건은 법원에 불리하기만 하다.

법원에 비판적인 여론이 높은 데다 변협마저 법원 판결을 비판하고 나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검찰 출신 국회의원이 다수이고, 검찰 출신 교수들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거 진출하면서 학계에도 검찰의 입김이 세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부의 미래가 달린 법안 전쟁이 시작되는 마당에 법원이 수세에 몰려 곤혹스럽다”며 “외부 개입이 본격화되기 전에 국민이 만족할 만한 내부 개혁안을 완성해 스스로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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