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아찌아족 “섬의 아름다운 전설, 한글로 후손에 전해야죠”

  • 입력 2009년 8월 12일 02시 50분


■ ‘한글수출 1호’ 인도네시아 부퉁섬 찾아가보니
한국의 망부석 이야기처럼
풍부한 구전문화유산 많아
한글 열심히 배우고 싶은데
교과서 너무 부족해 아쉬워


《찌아찌아족이 사는 부퉁 섬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서울에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까지 비행기로 7시간. 자카르타에서 다시 마카사르를 들러 큰다리(Kendari)까지 비행기로 5시간을 더 가야 했다. 큰다리에서 하루 두 번 있는 배를 타고 5시간 걸려 바다를 건넌 뒤에야 부퉁 섬에 도착했다. 8일 오후 3시 45분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부퉁 섬에 도착한 것은 9일 오후 9시. 28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한글을 쓰는 찌아찌아 사람들을 보자마자 피곤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찌아찌아 사람들은 웃음이 많았다. 가는 곳마다 “꼬레아?”라며 관심을 보였다. 기자가 “할로(halo·영어의 헬로와 같음)”라고 손을 흔들자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며 깔깔 웃었다. 11일 먼 이국에서 만난 찌아찌아 사람들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들이 쓰는 한국말로 금방 정겹게 느껴졌다.

아직까지 한국인의 발걸음이 거의 없었던 곳. 가는 길도 마음도 멀기만 했던 부퉁 섬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쓴다. 찌아찌아족에겐 고유의 말이 있지만 글은 없었다.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말이 있어도 짧은 문학작품 하나 글로 남기지 못했다. 처음으로 한글을 글로 가지게 되면서 찌아찌아족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찌아찌아족은 근대까지 고립을 자처하며 자기만의 문화를 고수해 온 덕분에 독특한 전통 문화를 때 묻지 않은 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바우바우 시내에는 그들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녹아 있다. 사람들이 집을 짓고 닭을 키우며 한가롭게 사는 곳 옆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진 둘레 2.47km의 ‘크레톤 요새’가 있다. 1542년 이 섬에 이슬람교가 들어오면서 첫 술탄(Sultan)이 된 왕의 무덤도 마을이 내다보이는 곳에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다.

자식과 조카들에게 전통 춤인 린다춤과 무술을 가르쳐온 라사미리 씨(46)는 “찌아찌아족의 문화유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고 자랑했다. 찌아찌아족은 해마다 두 번씩 전통 춤과 무술, 음악을 미리 부족 주민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내기철 신에게 풍작을 기원하면서, 수확 뒤 감사 인사를 드리며 축제를 열었지만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8월 17일 독립기념일 행사를 앞두고 공연을 펼친다. 공연은 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제단인 바루가 앞에서 열린다. 찌아찌아족은 바루가를 다른 장소로 옮기면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들어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글이 없어 이렇다 할 역사서나 전통 문학이 하나도 없다. 글이 없어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다 보니 많은 부분이 변형되고 소멸돼 원형을 찾기가 힘들다.

바루가 앞에서 열린 찌아찌아 전통 공연에서 1등상을 거머쥔 아리스 씨(23)는 “직접 전통 춤을 배워 소중한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글이 없다는 게 우리에게 모자란 부분이었다”며 “앞으로 한글을 통해 찌아찌아족의 문화를 더 풍부하게 발전시킬 수 있게 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고교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카사타니아 양(15·여)은 찌아찌아족인 아버지와 삼촌, 어머니에게서 찌아찌아족의 전설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카사타니아 양이 기억하는 전설은 많지 않다. 찌아찌아어로 된 이야기를 인도네시아어로 그대로 번역하기도 힘들고 어린 시절 잠결에 들었던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키만큼 긴 여자가 연인을 기다리다 돌이 됐대요.” 아버지가 찌아찌아어로 들려준 길고 긴 망부석 이야기 중에서 카사타니아 양이 기억하는 내용은 이게 전부다. 카사타니아 양은 “책으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잊어버리지 않고 친척 동생에게도 자세히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한글 수업에 열심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그는 한글 공책을 펼쳐 들었다. ‘바하사 찌아찌아’ 교과서도 30권밖에 없어 초등학교 4개 반이 조금씩 나눠 가졌는데,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아비딘 선생님이 쓰는 한 권밖에 없다. 카사타니아 양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써준 노트 필기만 가지고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은 빈 책상에 앉아 복습을 한다.

카사타니아 양의 어머니 와사리 씨(52)는 찌아찌아어밖에 할 줄 모른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어도 함께 할 줄 알지만 와사리 씨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해 부모님께 배운 찌아찌아어만 한다. 카사타니아 양은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어만 해 글을 쓸 줄 모르는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단다. 그런 딸을 보며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모범생인 막내딸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 한국어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요.”

영어 선생님이 한글 전도사로
아비딘 씨, 이호영 교수와 교과서 내… 사전 출간 계획도

바우바우 시 제6고등학교(SMA6) 영어 교사인 아비딘 씨(33)는 한여름 인도네시아에서도 긴팔에 잠바를 입고 다닌다. “한국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아비딘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기를 빼고는 1년 내내 무더운 날씨 속에 살아 추위를 많이 타는 인도네시아인 아비딘 씨는 한국 이야기를 꺼내자 추웠던 기억에 몸서리쳤다.

서울대 이호영 교수(언어학)와 함께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 ‘바하사 찌아찌아’를 만들기 위해 아비딘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한국에 머물렀다. 서울대 근처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16.5m²(5평)짜리 원룸을 구해 놓고 혼자 5개월을 지냈다.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어 학교 밥 대신 근처 시장에서 쌀과 생선을 사다 밥을 지어 먹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을 먼 고향에 두고 온 그는 코끝이 시리게 추운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 생각이 났다. 같이 한국을 찾은 다른 영어 선생님은 매일 가족 생각에 울다가 포기하고 부퉁 섬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깊숙한 섬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한국에까지 와 서울대 교수와 함께 연구를 하게 된 것은 한글로 된 교과서 때문이었다. 이 교수는 한국외국어대 전태현 교수(말레이·인도네시아통번역학과)의 소개로 찌아찌아족을 알게 됐다. 자기 글이 없는 민족에게 한글을 주고 싶었던 전 교수는 고유의 말은 있지만 글이 없고 중앙정부의 견제가 덜한 부족을 찾다가 찌아찌아족을 알게 됐다. 이 교수는 지난해 7월 찌아찌아족을 만나러 와 바우바우 시의 아미룰 타밈 시장과 교육 관계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한글을 쓰겠다”는 대답을 얻어냈다.

이 교수와 아비딘 씨는 내년 여름 전까지 ‘바하사 찌아찌아’ 2권을 만들 계획이다. 찌아찌아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아랍어 등 4개 국어로 된 사전도 낼 계획이다.

바우바우(인도네시아)=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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