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핏빛 사랑으로 찾아왔다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박쥐’에서 주연을 맡은 송강호(오른쪽)와 김옥빈은 “삶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영화”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박쥐’에서 주연을 맡은 송강호(오른쪽)와 김옥빈은 “삶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영화”라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박쥐’ 주연 송강호-김옥빈 인터뷰

‘박쥐’(30일 개봉)가 난리다.

5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진출 소식은 박찬욱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의 실체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케이블TV채널 수퍼액션이 영화의 개봉에 맞춰 특집으로 편성한 ‘흡혈귀 공포영화 연속 방영’은 오해의 소산이다. ‘박쥐’는 뱀파이어 영화처럼 보이는 로맨스 영화. 뱀파이어가 된 사제 상현과 유부녀 태주의 지독한 사랑 얘기다. 26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주연 송강호(42) 김옥빈(23)을 만나 그들이 뒤집어썼던 핏빛 사랑에 대해 물었다.

“너… 나 사랑하잖아. 그래서 못 떠나지?”

오물오물 씹고 있던 오렌지를 꼴깍 삼킨 김옥빈이 기자를 바라보며 하이 톤의 영화 속 대사를 대뜸 다시 읊었다. 흰자위를 크게 치켜뜬 눈. 입꼬리에만 살짝 머금은 웃음. 섬뜩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표정에 홀려 “그래…어떻게 떠나겠니”라고 대답할 뻔했다.

“태주의 당돌한 행동은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거예요. 모든 것을 바쳐 자기만 사랑해주는 신부 상현을 못 만났다면 내면의 억눌린 욕망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이 남자, 나를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구나’ 하는 자신감. 그런 든든한 울타리는 여자를 맘껏 날아오르게 만들죠.”

부모에게 버림받고 구박덩이로 자란 태주에게 구원처럼 찾아온 사랑이지만, 이들의 관계 위에도 금세 지긋지긋한 원망이 쌓인다. 상현의 품에 안겨 건물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태주의 환희는 한순간뿐. 영화 중반 태주는 “당신은 날 죽여도 후회하고 살려도 후회할 것”이라며 상현을 조롱한다. 송강호는 상현에 대해 “신부라는 본분 때문에 완전히 버렸다가 뱀파이어가 돼 다시 찾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서투르지만 소중하게 지켜내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사제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친구의 아내인 태주에게 잠깐 빠졌더라도 금방 지겨움을 느끼고 벗어나려 했을 거예요. 상현은 ‘나 신부 아니라니까’ 하고 태주에게 자꾸 짜증을 내지만, 결국 뼛속까지 신부였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을 지켜내는 겁니다. 첫 키스, 첫사랑을 구원하겠다는 믿음… 신을 사랑하듯 태주를 사랑한 거죠.”

김옥빈은 “실제로 그렇게 징글징글한 사랑을 해봤느냐”는 질문에 “아직 스물 셋밖에 안 됐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송강호가 “그러니 더 대단한 연기”라고 끼어들었다.

“태주가 뱀파이어로 변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는 정말 많은 감정이 얽혀 있어요. 사랑, 죄책감, 공포, 연민, 원망, 자포자기…. 짧은 시간에 롤러코스터처럼 그런 감정의 휘몰이를 넘어가야 하는데, 옥빈 씨가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몰입해줘서 저는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연기만 했죠. 두 번 나올 수 없는 감정이라서 리허설도 못하고 초긴장 상태였어요. 솔직히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옥빈은 “이리저리 튀고 늘 불안한 원래 성격 덕분에 캐스팅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이 ‘태주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여편네’여야 한댔어요. 제 첫인상에 상대를 긴장시키는 뭔가가 있대요. 첫 만남 자리에서도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다 드러냈는데 그런 게 어울린다고 보신 건지… 모르겠어요. 촬영하면서는 그저 ‘폐는 끼치지 말자’ 생각했거든요.”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게 한 두 사람의 베드신은 몸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억지로 가리려 하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김옥빈보다 송강호의 나신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베드신 때문에 10kg 뺐다는 얘기는 오해”라고 말했다.

“금욕적인 사제의 모습에 대한 나름의 고민에서 얻은 답이 체중 감량이었어요. 다리 근육이 볼만하다고요? 시간 날 때 동네 야산 잠깐 올라갔다 오는 것 말고는 운동 전혀 안 하는데… 히히히.”

송강호는 종교가 없다. 사제의 미사 동작은 서울 명동성당의 양해를 얻어 찍은 비디오를 돌려보며 연습했다. 배경에 깔리는 바흐의 칸타타도 직접 리코더로 연주했다. 김옥빈은 “피아노교습소 옆집에 살아보셨어요? 게다가 같은 멜로디로 한 달 넘게… 어휴”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피리 부는 시늉만 내려 했던 송강호는 첫 촬영 때 퇴짜를 맞고 그날 밤 혼자 술을 마셨다. “안이했죠. 창피했습니다. 음악에 문외한이라 진짜 힘들었어요. 두 소절만 더 익히면 완주인데… 연습하고 칸 가서 한번 불어볼까요?(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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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자평|

독설과 키치 아이러니로 점철된 인간 욕망과 종교에 대한 준엄한 성찰. ★★★★ (정지욱)

핥고 빨고 헐떡거리면서 숭고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이 영화는. ★★★☆ (김영진)

다음 장(章)을 기대하게 만드는, ‘박찬욱 월드’ 한 장의 근사한 마무리. ★★★★ (동아일보 영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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