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역풍에 관공서 곤욕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여긴 진짜 경찰서 맞거든요” “이 사기꾼아 안 속아”

범죄 이용된 경찰-세무서 등 실제 전화도 퇴짜맞기 일쑤

확인 등 업무 늘고 민원 지연 “조금만 주의하면 구분 가능”

“여기 동작경찰서입니다. 계좌의 비밀번호가 노출됐으니 서둘러 지급 정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기꾼아. 네가 경찰이면 난 경찰 할아버지다.”

서울 동작경찰서 지능팀 반장 나석구 경위(51)는 최근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통장에 돈을 입금한 피해자들 가운데 아직 피해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경찰”이란 말을 믿지 않고 보이스피싱 사기범으로 오인했다.

나 경위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서인지 경찰이라고 하니 아예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저희 진짜 맞거든요”

경찰서, 우체국, 세무서 등의 관공서들이 급한 업무로 시민들에게 전화나 문자로 연락을 해도 ‘보이스피싱 사기범’으로 오해받아 업무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광진우체국 집배원 권오승 씨(50)는 15일 이사 간 수령인에게 우편물을 전해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령인은 “광진우체국”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은행, 국세청, 세무서 등 실제 계좌를 통해 돈이 오고가는 곳은 더욱 의심을 받는다. 서울 영등포세무서 국세환급금 담당 송순화 조사관(30)은 “국세환급금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이 많아서인지 실제 환급금 문제로 전화를 해도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전했다.

진짜 관공서인지 일일이 확인하려는 시민들이 많아지면서 관공서의 업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

중앙우체국 민원실에서 근무하는 이문열 씨(21)는 “보이스피싱에 관한 문의 전화가 너무 많아 업무가 어려울 정도”라며 “이 때문에 우편 문의를 하려던 민원인이 한참을 대기해 또 다른 민원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ARS 안내전화 의심해봐야”

이에 따라 관공서들도 다양한 고육책을 내놓고 있다.

영등포 세무서에서는 전화로 계좌번호 등을 요구하지 않고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직접 계좌번호를 입력해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찰도 전화를 하기 전 우편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낸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지능팀 관계자는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전화로 출석요구를 하면 믿지 않아 직접 우편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보이스피싱과 실제 관공서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체국의 경우 문자메시지엔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는다. 발신번호로 전화를 유도하는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서다. 택배, 등기 등의 반송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도 아예 보내지 않는다. 그 대신 우편물도착 알림서를 현관문에 붙인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계좌와 관련해 개인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 정보가 유출됐으니 특정 계좌로 돈을 입금하라”는 말은 믿지 말아야 한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관공서는 되도록이면 문서를 이용해 정확하게 민원인에게 고지해야 하고 시민들은 무조건 의심하기보다 보이스피싱인지, 진짜 관공서인지를 신중하게 구분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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