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현희-다구치가 일깨운 韓日 납북자 가족들의 고통

  • 입력 2009년 3월 12일 02시 59분


북한 공작원이었던 김현희 씨는 어제 부산 벡스코에서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씨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즈카 씨도 김 씨로부터 31년 전 납치된 어머니 소식을 듣고 울먹였다. 김 씨는 1987년 대한항공 858기를 공중 폭발시켜 115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범인이다. 김 씨는 평양에서 공작훈련을 받으며 다구치 씨에게서 일본어를 배웠다. 이즈카 씨는 한 살 때 어머니와 생이별했다. 북한의 납치행위로 혈육을 잃거나 빼앗긴 한일 양국의 다른 피해자들도 함께 분노하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김 씨와 다구치 씨 가족의 면담은 일본 정부의 끈질긴 노력으로 성사됐다. 일본 정부는 올 1월 김 씨가 NHK 인터뷰에서 “다구치 씨의 아들을 만나 엄마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하자 우리 정부와 접촉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인권과 인도적 문제 해결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김 씨를 노출시키면 북한 정권을 자극할까봐 면담을 거부했던 지난 정부의 비인도적 처사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정부가 할 일은 두 사람의 상봉으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은 일본인보다 훨씬 많은 우리 국민을 납치했다. 끌려간 국민 가운데 아직도 447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정부는 끈질기게 납북자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는 일본 정부에서 배울 게 많다. 일본 납북자 문제가 부각되면 북핵 6자회담의 초점이 흐려질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반인도적(反人道的) 범죄의 희생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는 북한에 납북자 송환을 강력하게 촉구해야 한다.

김 씨는 기자회견에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은 북한의 테러이고 저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일부 유족과 친북좌파의 의문 제기에 따라 국가정보원이 재조사를 벌이는 일까지 있었다. 심지어 친북 세력은 김 씨를 가짜로 모는 것도 모자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폭파사건을 지시하지는 않았다”는 거짓증언을 하라고 협박했다.

북한 정권은 폭파사건에 대해 사죄하고 납북자들을 돌려보내지 않는 한 결코 테러의 굴레를 벗을 수도 없고,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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