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하진]인터넷이라는 괴물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작가라는 이름을 건 지 십수 년이니 이따금 이런저런 매체와 인터뷰할 일이 생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딸아이의 도움으로 입체 화장도 해보고,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아, 네, 그건 이렇지요”라고 하면서 평소보다 착한 척, 예쁜 척하며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조금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고는 끝. 나는 인터뷰 기사의 결과물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두어 주 전 인터뷰를 마친 날, 그날은 예외였으니, 문제는 인터넷이었다. 몇 가지 질문을 하던 기자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던 것. “지도교수께서 선생님에게 소설에 재능이 없다, 소설 쓰지 마라, 그랬다는 말, 그거 진짜예요?” 찻잔을 들던 내 손이 멈칫하는 걸 본 기자가 “아니, 그냥 인터넷에 있어서…”라고 얼버무리며 그 순간이 지나갔고 나 역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그날 밤, 슬며시 발동한 호기심으로 인터넷 검색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한 것이 잘못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는 너무도 많은 내용이 올라 있었다. 문장을 들어 칭찬을 한 글이 있었고 내 소설의 어떤 부분을 조목조목 비판한 글도 있었다. 신문의 리뷰기사를 읽고 책을 샀으나 책값이 아까웠다는 노골적인 불평, 자기 생활을 소설이랍시고 시시콜콜 얘기하는 여성 작가에게 신물이 난다는 뜨끔한 지적이 있었다. 글이라는 것을 쓰는 사람이니 이런저런 평가를 들어온 바였지만 인터넷의, 그 날것의 언어는 에누리 없이 무참하고 신랄했다. “아니, 이건 좀 심하잖아” 싶어 작성자에게 개인 메일을 보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를 여러 차례, 마침내 나는 그날의 불씨가 되었던 문제의 글을 찾아냈다.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 떠돌아

글은 이렇게 시작되어 있었다. 작가 서하진은 지도교수님께 소설에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은 일화로 알게 모르게 유명하다…. 이어지는 글을 읽으면 나는 그 일에 독기를 품고 소설을 계속 썼으며 그리하여 당당하게 자신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다는 거였다. “아, 칭찬으로 전환인가”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잠시. 글의 결론은 열심히 소설을 쓰고는 있으나 그녀의 소설은 별 재미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생각은 자유이고 평가 역시 개인의 몫이니, 또한 스스로의 소설을 썩 재미있다 여겨본 적이 많지 않으니 거기서 화면을 접고 하던 작업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블로그의 주인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내 후배였고 내게서 받았다는 사인까지 친절하게 올려놓았으므로 누가 보더라도 ‘알게 모르게 유명한 그 일화’는 당사자인 나만 모르고 있던 사실일 것으로 보였다. 약간 흥분한 상태에서 나는 여러 포털사이트의 글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날 밤, 나는 완전히 인터넷에 낚이고 말았다. 날이 훤히 밝아올 무렵 웹 서핑을 끝내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하루도 빠짐없이 인터넷이라는 걸 이용하면서, 웹상에서 오가는 갖가지 풍문이 뉴스거리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심지어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어떤 이의 죽음을 초래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와도 상관있는 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온 것이 서글프고, 이제껏 그랬으면서 뜬금없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스스로가 또한 우스꽝스러웠다.

우리 세기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라는 인터넷, 뉴스를 알려주고 누군가의 사업에 중요한 도움을 주고,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세상 누구와도 통신이 가능하게 한, 더는 밀실의 언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한, 모든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어 낸 놀라운 도구…. 인터넷이라는 괴물을 그 밤 나는 싫도록 경험한 셈이었다. 언제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수필 두 편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점을 위안 삼으며 나는 컴퓨터를 닫았다.

상대방의 상처 생각해 봤으면

전원을 끄고도 나는 한동안 침묵하는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화면조차 대단히 심술궂게 보였다. 재능이 없다는 한마디가 그토록 엄청난 충격이었나. 그건 아니었다. 문제는 말하는 방식이었다. 당장 듣는 이가 없는, 상대방의 반응을 즉각 확인할 수 없는 편리함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용어를 얼마나 가볍게, 용감하게, 가혹하게 만드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내 견해가 옳을 때에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비록 바보라 할지라도 대놓고 바보라고 하면 화가 나는 법이라는 걸.

서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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