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천륜 거스를 수 없다지만…핏줄만큼 끈끈한 친권

  • 입력 2008년 11월 13일 10시 46분


故 최진실 씨 유족과 전 남편 조성민 씨(자료사진 )
故 최진실 씨 유족과 전 남편 조성민 씨(자료사진 )
최진실 사건 계기 뜨겁게 달아오른 ‘친권 자동부활’ 논란

‘천륜’은 ‘인륜’에 우선하는가.

최근 고(故) 최진실 씨의 유족들과 전 남편 조성민 씨 사이의 갈등이 알려지면서 우리사회 알려지지 않았던 한 부모 가정의 친권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최근 들어 친권 상실을 청구하거나, 친권 회복을 청구하는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 10월 현재 전국 법원에서 접수된 건수만도 180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혼 후 부인이 양육권을 가져가도 부인이 사망하면 전 남편의 친권이 자동으로 부활하는 것이 논란의 초점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법조계와 사회 각 층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사례-불법체류 외국인 생부가 친권 소송 제기

최근 개그우먼 김미화 씨는 “최진실 씨의 사례를 보고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김씨는 재혼한 뒤 아이들을 현 남편의 '친양자'로 올렸다. 그렇지 않으면 김씨가 사망한 뒤 아이들의 친권이 자동으로 전 남편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재혼한 남편이 전 남편의 아이들을 '친양자'로 받아들인다하더라도 친권문제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전 남편이 언제든 소송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7살 딸을 둔 30대 주부 김모(36) 씨는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7년 만에 나타난 불법체류 외국인인 전 남편으로부터 친양자 취소소송을 당해 오는 12월 9일 재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당장 변호사 선임비 1200만원도 걱정이지만 친부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아이가 받게 될 충격을 생각하면 불면증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1999년 스리랑카 출신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져 우여곡절 끝에 2001년 결혼에 골인했다. 불법체류경력으로 입국이 불허되자 강금실 법무장관에게 탄원서까지 내면서 어렵게 남편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막상 결혼 생활이 시작되자 두 사람 사이는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딸아이가 생후 6개월이 되던 2003년 3월경 아침에 출근해서 그길로 집을 나가 버렸다. 김 씨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고자 돌도 되지 않은 딸아이와 함께 TV에 출연했지만 남편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그러다 2004년 경찰서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외국인이 잡혀 있다고 연락이 와서 남편을 만나게 됐다. 각서를 쓰고 집으로 데려온 남편은 다음날 또 다시 집을 나가 버렸다. 결국 김 씨는 아이 아버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2005년 12월 재판 이혼을 하게 됐고 1년 후 지금의 남편 한 모 씨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게 됐다. 재혼을 한 김 씨에게는 고민이 생겼다. 딸아이가 동생과 자신의 성이 다른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 재혼한 남편은 ‘친양자 입양신청’ 얘기를 꺼냈다. 남편의 도움으로 지난 7월 딸아이는 동생과 같은 성을 선물 받게 됐다. 그런데 7년만에 불법체류자인 생부가 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천륜이라는 이유로 이제껏 잘 자라준 아이가 상처를 받든 말든 소송을 내다니, 저와 아이의 눈물겨운 고통은 무시되고 오직 친부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취소소송이 이뤄진다는 것은 내국인 외국인을 떠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인터넷에는 김 씨처럼 이혼 후 친권 문제로 곤란을 겪은 사람들이 만든 까페가 있다. 바로 ‘조성민 친권 반대 까페’(http://cafe.daum.net/choijinsil123)로 회원수가 1만 여명이 이른다. 이 까페 회원들은 표면적으로 조성민의 친권 회복을 반대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혈연 중심의 법은 보완 내지 수정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현재 이 까페에는 “이혼 후 10년 만에 장만한 아파트의 명의를 미성년자인 딸과 자신의 명의로 했다가 처분할 때 전 남편에게 동의를 받아야 했다. 전 남편은 순순히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돈을 요구했다”, “내가 죽으면 애들에게 갈 재산을 이혼한 배우자가 차지한다는 사실에 보험을 해약했다”는 사연이 올라오고 있다.

현행 법과 판례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유교에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천륜(天倫)’이라고 하듯, 우리 법에서도 친권은 자녀의 출생으로 바로 발생하는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부모가 이혼할 경우 친권은 사라지지 않고 그 행사권(법정 대리권)만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옮겨갈 뿐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양부모가 있더라도 생물학적인 부모가 나타나면 그 사람이 우선한다. 계부모도 친권자가 될 수 없다.

법은 친권을 상실하는 사유도 아주 엄격하게 정해 놓고 있다. 친권을 남용하거나 현저한 비행을 저지른 때나 다른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행사가 제한된다. 심지어는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던 아이도 일정 시간 보호기관에서 지내다가도 다시 원래 가정으로 복귀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친권자의 재산관리권만 정지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경우도 정상적인 법률행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판단능력이 없는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의 경우에 한한다.

친권 상실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남편과 불화로 집을 나가 별거한 후 10년 만에 남편이 교통사로로 사망하자 보상금을 전부 수령해 모두 써버리는 등 자녀들의 부양에 대해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자식들에 대한 친권을 행사시킬 수 없다는 판례(대법원 1991.12.10) 정도가 있다.

반면 간통 행위를 저질러 남편을 자살에 이르게 한 어머니의 친권을 그대로 유지시킨 판례(대법원 1993.3.4)도 있다. 재판부는 자녀들의 양육과 보호에 관한 의무만큼은 이를 소홀히 하였다고 볼 사정이 없는 반면, 친권이 상실될 경우 자폐증과 이상비대증이 엿보이는 두 자녀의 양육을 74세 조모가 키워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조성민의 친권은 당연. 소송해도 이기기 힘들어

법원은 친권상실을 위해서는 단순히 친권자에게 현저한 비행으로 보이는 행위 또는 친권남용으로 보이는 행위가 존재하는 사실만으로 부족하고, 그 정도가 자의 복리를 위하여 친권자의 친권을 상실시키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후견을 시키는 것이 보다 낫다는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안된다(대구지법 1989.6.15.)고 판시해 놓고 있다.

따라서 최씨 유족이 조씨를 상대로 소송을 내더라도 이기기 힘들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현재 조성민 씨는 아이들의 대한 친권은 분명히 본인에게 있음을 밝히고 유가족들에게 고인의 재산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 3자가 신탁관리하게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로는 아이들에게 유산이 제대로 쓰여 지는 지 알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의 양육과 관련해선 지금처럼 외가에서 잘 키워달라는 입장이다. 조 씨는 이혼 후 2005년 7월 이혼의 원인으로 지목된 심모 여인과 재혼했다.

반면 최 씨의 유가족들은 폭행 시비 끝에 갈라선 조성민이 최 씨의 재산을 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혼 당시 빚을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친권을 포기한 조 씨가 왜 나서냐는 것이다. 조 씨가 이혼 후 아이들을 보러 가거나 양육비를 지급한 적이 없는 것도 주된 이유였다.올해 초 최 씨는 전 남편의 재혼 사실을 알고 아이들의 성까지 최씨로 바꿨다.

(조성민 씨는 지난9월 여성지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섣불리 다가서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예의도 아니고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논란의 핵심은 ‘친권 자동 부활’

최 씨의 죽음으로 두 자녀에 대한 전 남편 조성민 씨의 친권이 자동 부활한 것은 많은 논란을 몰고 왔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친권이 자동적으로 부활한 것은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현행법상 유서로 미리 후견인을 지정해도 친권자가 있는 한 권리행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조성민 씨는 제 3자에게 두 자녀의 유산을 투명하게 신탁관리 하겠다고 하지만, 현재 신탁관리에 대한 법률상 조 씨가 언제든지 이를 해지할 수 있어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

법무법인 드림의 엄윤상 대표변호사는 “유교의 탓인지 친권의 법적 요건이 너무 강해 현실적인 면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까지 한 마당에 이혼한 타방에게 친권이 가는 것도 문제이고 아이들이 받게 될 혼란을 생각해서도 친권의 자동 부활이 아닌 실제 양육자인 할머니를 후견인으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원민경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친권이 옮겨질 때마다 법원이 자녀 양육에 적합한 사람인지 먼저 따지고 심사한 다음 친권자 및 양육자를 결정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있다”며 “비슷한 장치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지난 11일 방송인 손숙, 허수경 씨 등이 주축이 된 ‘한부모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모임’ 기자회견에서도 나온 바 있는 ‘친정어머니의 재산분할권’이다. 최 씨의 어머니 정 씨는 딸을 대신해 살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등 재산형성에 기여한 바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씨도 생전 어머니로부터 용돈을 받아 쓸 정도였다고 한다. 원 변호사는 “부부 사이라면 가사 노동권을 인정 받았겠지만 친정어머니의 재산 형성권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정 씨가 조성민 씨에게 친권 상실 청구를 하는 것 외에는 재산을 지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엄윤상 변호사는 “한 가지 기댈 것은 최근 판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혼의 경우 유책주의(일방에 이혼의 책임이 있을 경우에만 이혼 성립)에서 파탄주의(책임에 관계없이 결혼 생활이 파탄에 빠진 경우)로 변했다. 호주제 폐지와 더불어 친권 판례도 변하지 않을 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유림의 본산 성균관에서는 “조성민의 두 자녀에 대한 친권 주장은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천륜이고 이것은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관계인만큼 친권의 자동 부활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성균관의 최영갑 기획실장은 12일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부모에 대해서 자격 규정을 하고 있지는 않다”며 “부모만큼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자식을 놓고 재산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법적으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재산을 국가가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기른 부모의 양육권과 친권도 함께 논의돼야한다는 ‘전향적’인 의견도 피력했다.

생부·생모의 입장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한편으로는 생부로서의 조성민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해야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고 최진실씨의 동생인 최진영씨는 "평생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조카들의 아빠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과연 삼촌이 친 아빠보다 더 아이들을 생각해 줄 수 있을 지 의구심을 자아낸다는 이들도 많다.

조성민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최진영씨도 최진실의 유산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관리할 것인지 계획과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그렇지 않으면 최진영씨 역시 아이들이 아니라 재산을 위한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을 떨치기 힘들다.

최진실씨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악플’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덧붙여 ‘친권’에 대한 논란도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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