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정규직 고용기간 2년에서 3~4년으로 연장 추진

  • 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8분


내년 7월 ‘정규직 전환 의무’ 첫 적용

기업 ‘대량 해고’ 우려… 일단 미루기

기업들 기간제 줄이고 파트타임 채용 늘어

“법 이대로 두면 고용불안 그대로” 공감대

정부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에 나선 것은 이 법이 입법 취지와 달리 ‘비정규직 퇴출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만큼 법 시행 만 2년이 되는 내년 7월 1일을 전후해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근로자의 대량 해고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비정규직 해고대란(大亂)은 앞당겨 벌어질 우려가 크다.

○ 비정규직 일자리 빼앗는 보호법

비정규 기간제 근로자의 ‘해고대란’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채용 2년 뒤에는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 근로자의 채용을 줄이고 해고가 손쉬운 시간제(파트타임) 근로자를 채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는 지난 1년간 16만6000명이 줄었지만 시간제 근로자는 2만7000명 늘었다. 용역근로자도 같은 기간 4만8000명이 늘어났다. 비정규직 내에서 그나마 양호한 일자리인 기간제 고용이 더 열악한 조건으로 대체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고용이 줄어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도 8월 현재 544만5000명으로 지난해 8월보다 25만8000명(2.1%) 줄었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3.8%로 2004년 8월 37%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는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을 먼저 내보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기성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최근 내놓은 ‘비정규직보호법의 효과와 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비정규직법은 긍정적인 효과에 비해 부정적인 효과가 너무 크다”며 “기간제 사용기간을 3, 4년으로 늘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 엇갈리는 노사정 해법

노사 양자는 현행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해고대란’이라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고용기간을 3∼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은 해고대란을 뒤로 미루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한다.

정부가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경제 사정이 어려운 만큼 우선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유지하면서, 정규직화 가능성을 열어 두려는 절충식 대응책인 셈.

사용자 측은 사용기간 제한을 아예 폐지하거나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한다면 사용기간을 무제한 연장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비정규직만 계속 양산할 뿐이라며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을 1년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이달 중순 열리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점을 찾을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사용제한 기간을 늘리되 차별시정 제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궁극적인 해법은 정규직 노조의 양보에서

사실 비정규직 급증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사용자 측의 합작품이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의 ‘철밥통 고용’과 고임금에 따르는 기업 부담을 비정규직에게 떠넘기는 것을 묵인했다. 사실상 150만 조직 근로자가 544만 비정규직을 수탈하는 구조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의 열쇠도 대기업 노조가 쥐고 있다. 일부 은행 및 병원 노조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룬 것은 정규직들이 임금 동결을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정규직을 없애라”고 목소리만 높이면서 자신의 기득권은 고수하겠다는 것은 기업이 망하라는 얘기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접근으로는 ‘노동자 동지’의 고통을 덜어 줄 길이 사실상 막막하다.

::비정규직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는 크게 △한시적 근로자 △시간제 근로자 △비전형 근로자 등 3가지로 나뉜다. 한시적 근로자에는 기간제와 비(非)기간제가 있다. 기간제 근로자는 일하는 기간이 1년이나 2년 등 계약으로 정해진 근로자다. 비기간제 근로자는 근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일단 일을 시작한 후 사정에 따라 계속 일을 하거나 그만두는 근로자다. 시간제 근로자는 편의점이나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 주당 36시간 미만의 파트타임 업무를 맡는 사람들을 말한다. 비전형 근로자에는 파견, 용역, 일당 근로자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 7월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은 법 시행 이후 근무기간이 2년을 초과한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올해 8월 기준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544만5000명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는 236만5000명(43.4%)이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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