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촘스키가 비싸게 팔리는 한국

  • 입력 2008년 11월 5일 20시 09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놈 촘스키(80) 종신교수는 1955년 ‘언어 이론의 논리 구조’라는 논문으로 언어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들었다.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언어학이 아니라 미국을 ‘악(惡)의 근원’이라고 공격한 극단적 사회비평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은 자본가와 군대가 움직이는 ‘불량배 국가’이고 미 행정부는 ‘정신분열증 환자’다. 과격한 논리로 미국 내에서도 ‘한물간 좌파’라는 딱지가 붙은 촘스키는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뉴욕타임스에 ‘(미국을 공격한 9·11이 테러가 아니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테러’라는 글을 실었다.

그의 ‘복귀’를 미국보다 더 환영한 곳이 바로 한국의 출판계다. ‘불량국가’ ‘정복은 계속된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한다’ 같은 책과 칼럼집 강연집을 앞 다퉈 쏟아냈다. ‘행동하는 지성’ ‘세계의 석학이 말하는 쓴소리’라는 찬사가 달렸다. 지금 한국 서점에 나온 그의 책은 20종이 넘는다. 미국 지식인이 외치는 반미(反美) 구호가 좌편향 출판계의 코드에 들어맞았던 모양이다. 미국에선 오히려 9·11 이후 그를 비판한 책들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비판의 가치조차 없었지만 너무 황당한 주장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 책을 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폭넓은 시각의 미국 양서(良書)들을 망라해 소개한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이상돈·기파랑)에 포함된 ‘촘스키 비판서(The anti chomsky reader)’는 그의 논리적 허구와 사실왜곡을 신랄하게 짚은 학자 9명의 논문을 싣고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의 공산화 과정에서 있었던 대학살을 사회혁명이라고 칭찬하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허구라고 주장한 촘스키에 대해 저자들은 “거짓말을 일삼는 병적(病的) 위선론자”라고 꼬집었다.

스탠퍼드대 후버센터 연구원 피터 슈바이처는 ‘(내 행동을 따라하지 말고) 내 말을 따르라(Do As I Say)’는 책에서 아예 촘스키의 사생활을 파고든다. ‘촘스키는 입으로는 미국 기업을 “사적(私的) 독재자”로 몰아붙이면서 주식투자를 한다. 자본주의를 “거대한 재앙”이라고 욕하면서 강연료와 인세 수입으로 호화 주택과 별장을 가진 상위 2% 안의 부자다. 9·11 이후 1회 9000달러 강연료를 1만2000달러로 올렸다. 국방부를 미국의 암(癌)이라고 하면서 국방부 연구비를 받아썼고 흑인과 여성 차별을 비판하면서 자기 연구진은 백인 남성만 쓰고 있다.’ 미국 내 반(反)촘스키론자들은 그를 ‘귀족 좌파’라고 규정한다.

한국 국방부가 촘스키의 책 2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 카페 운영자가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촘스키는 “한국의 국방부는 ‘반(反)자유 반(反)민주 국방부’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비난했다. 틈만 나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석학’이 발끈하는 모습에서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동족과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 분단국가 한국에서 사상의 자유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사상이나 이념도 자유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에 의해 선택된다는 점에서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의 책만 나오는 지식시장은 건강하지 못하다. 하물며 한물간 좌파 지식인의 책을 그의 조국보다 훨씬 더 대접해주는 분위기는 촌스럽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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