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따로 또 같이”… 건축, 농촌에 말을 걸다

  • 입력 2008년 10월 11일 02시 56분


◇감응의 건축/정기용 지음/384쪽·2만5000원·현실문화

이 책은 전북 무주군에서 1996∼2006년 일어났던 유쾌하고도 희망 가득한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그 변화는 대부분 농촌인 이곳의 공공 건축물을 사람과 자연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것. 문화재위원이자 건축가인 정기용 성균관대 석좌교수의 ‘무주 공공 건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10년간 농촌의 삶을 반영한 공공 건축물 30여 개를 설계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지론은 건축이 “어디서 자연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답게’는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라는 말과 같이 ‘따로 살지만 이웃과 함께 하는, 잊혔던 공동체의 힘을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촌 지역의 공공 건축은 삶과 동떨어져 사람들에게 감응을 주지 못했다.

저자의 프로젝트를 통해 무주 공설운동장은 등나무운동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운동장은 자연을 건축에 부수적인 조경으로 홀대하는 현대 건축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운동장의 스탠드를 자연스럽게 자라는 등나무 그늘로 뒤덮어 건축에서 자연이 주인임을 상기시켰다.

이는 주민들의 요구에 감응하는 것이었다. 당시 무주군수는 공설운동장에서 군내 행사를 많이 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지 않았다. 한 노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여보게 군수, 우리가 미쳤나! 군수만 본부석에서 비와 햇볕을 피해 앉아 있고 우린 땡볕에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무슨 벌 받을 일 있나”라고 화를 냈다.

저자는 스탠드 위에 둥그런 파이프 구조물을 설치해 등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했고 등나무는 빠른 속도로 자라 어느새 자연과 인공 건축이 하나가 됐다.

무주군 안성면사무소는 농촌 주민들의 뜻을 받든 대표적 사례다. 면사무소를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을까. 독서실? 강당? 휴게실? 아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라고 말했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인 안성면에선 목욕을 하기 위해 승합차를 빌려 대전까지 가야 했다. 이렇게 면사무소에 지어진 공중목욕탕은 마을 주민들을 결속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주군 부남면사무소와 복지회관 사이에는 천문대가 생겼다. 두 건물은 입구가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어 건물 사이 땅은 거의 쓸모없게 놓여 있었다. 저자는 부남면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으로 만들 겸 쓸모없는 땅을 이용할 겸 두 건물 사이에 천문대를 세웠다.

무주군의 버스정류장 벽에는 넓은 창을 만들어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의자는 ‘一’자가 아니라 ‘ㄱ’자 모양으로 만들어 버스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얼굴을 보며 자연스레 대화하게 했다.

유명 건축가를 지방의 작은 군으로 이끈 계기는 뭘까. 저자는 1990년대 초 지인들과 전국을 돌았다. 외국 도시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 우리나라의 지방에 대해선 제대로 모른다는 반성에서 시작됐다. 전국을 돌던 어느 날 무주를 만났다.

‘아니, 한국 땅에 이처럼 변치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이 남아 있다니!’ 저자는 이 아름답고 좋은 땅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건축물을 짓기로 한 것. 그는 “단순히 집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정신이 원하거나 거부하는 것에 감응한다는 심정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