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REPORT]“회사 발전 위해서라면…” 使보다 열심히 뛰는 勞

  • 입력 2008년 7월 14일 02시 56분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4월 22일부터 29일까지 쿠바를 방문했다. 회사로부터 이동식 발전설비를 대량 구매한 쿠바 정부의 카를로스 라헤 부통령 등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오 위원장은 “앞으로 현대중공업에 발주하면 노조가 책임지고 최고의 품질과 납기를 준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요즘 국내 조선과 중공업업계는 노사가 따로 없다. 수주를 위해 노사 양측이 함께 뛰는 것은 기본이다. 노조가 직접 나서 발주처에 납기 준수를 보증하는 서한까지 보낼 정도로 협력 관계가 정착돼 있다. 노사 간에는 ‘갈등’과 ‘대립’이 있다는 상식을 무너뜨린 셈이다.》

중공업 노조, 외국에 “발주만 해주면 우리가 납기 보장”

○ ‘노동운동 메카’에서 ‘평화지대’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국내 중공업업계는 노동운동의 ‘메카’였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강성 노조가 득세해 매년 장기 파업을 되풀이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에서는 노조원들이 울산 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는 극렬한 투쟁을 펼쳐 ‘골리앗 투쟁’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대우조선도 일부 노조원이 분신하는 등 불황을 타개하려는 사측의 구조조정 방침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노사문제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상급 노동단체가 개입해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 조선경기 악화로 회사 사정이 나빠지자 두 회사 노조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경영이 어려워져 회사가 존폐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파업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를 맞대 ‘상생전략’을 짜내기 시작한 것.

경영사정이 상대적으로 나빴던 대우조선 노조가 먼저 나섰다. 대우조선 노조는 1991년 국제 조선경기 악화로 회사가 경영난을 겪자 분규 없이 노사협상을 마쳤다. 이때부터 대우조선 노조의 ‘17년 무분규’ 전통이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경영상태가 나쁘지 않았던 현대중공업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995년부터 무분규 대열에 합류했다. 상급 노동단체가 노사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노사 평화 정착이 약간 늦어졌지만 지난해까지 13년 연속 무분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조선 경기가 노사 평화 이끌어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국내 중공업업계가 노사 평화를 찾는 데는 국제 조선 경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 조선 경기 하락이 근로자들에게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 노사 평화 기조를 뿌리내리게 했다면, 경기 상승은 고용에 대한 안정성을 높여 지속적인 평화기조를 정착시켰다는 분석이다. 자칫 조선 경기 하락이 지속돼 구조조정이 일어났다면 모처럼 조성된 노사평화 기조가 깨졌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외환위기 시절에도 인력 감축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보너스까지 지급해 다른 업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여기에다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이 현대나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것도 노사 평화 기조 정착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 ‘회사가 어려워지면 도움받을 곳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과격한 노조 활동이 발붙일 여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 무(無)노조 전략을 쓰는 삼성중공업

세계 2위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그룹 방침에 따라 노조가 아예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없다. 회사가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의 복리후생을 제공하기 때문.

덕분에 2만여 명이 근무하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일터 외에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교육, 건강, 문화를 책임지는 시설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1990년 10월 문을 연 ‘삼성문화관’이 대표적인 사례. 삼성중공업이 이렇다 할 만한 문화, 체육시설이 없는 거제도의 지역적 여건을 감안해 지은 이곳에는 실내체육관과 소극장, 볼링장, 세미나실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이 파업을 겪는 등 비싼 수업료를 내고 노사 평화를 이룬 것과 달리 삼성은 선제(先制)적인 노조전략으로 같은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 대우조선 매각이 고비

상당 기간 노사 평화를 유지하던 국내 조선업계에 올해 4월 ‘큰 사건’이 발생했다. 대우조선 노조가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회사 매각 방침에 반발해 총파업을 결의한 것.

노조 측은 “경영난에 빠졌던 회사를 정상화하는 데 근로자들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며 “산은이 노조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회사 매각을 진행하면 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위해 노조는 산은 측이 회사 매각을 위한 사전 작업 중 하나인 실사(實査)를 막는 등 실력행사에 들어간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실제 파업에 들어갈지는 미지수지만 회사 매각을 앞두고 예민해진 대우조선 노조에 대해 일부 상급 노동단체가 산별노조 전환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칫 10여 년 이상 지속된 조선업계의 노사 평화가 깨질 개연성도 없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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