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27>양평 들꽃수목원 정일모 원장

  • 입력 2008년 5월 26일 02시 57분


“애들이 어디서 흙-곤충 만지겠나

여기와 신나게 놀고 배우면 만족”

연수원용 매입 10만㎡ 어린이 자연체험장으로

100억원 투입… “적자지만 꽃과 나무는 남겼죠”

서울에서 강변북로를 타고 경기 남양주시를 지나 양평군 양평읍에 다다르면 길가에 ‘들꽃수목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수목원이지만 다른 곳과 달리 높은 산이나 울창한 숲은 보이지 않는다. 수목원 너머로 남한강이 흐를 뿐이다.

정일모(76) 원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산 대신 강이 있는 수목원이 바로 이곳”이라고 설명했다.

○ 무전기 전문가에서 생태 전문가로

“내가 해군 출신이잖아. 원래는 바다 근처로 가는 게 맞지만 대신 강으로 왔지.”

정 원장은 6·25전쟁이 터지자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전쟁통에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다.

해사에 다니던 중 휴전을 맞았고 우연한 기회에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대학원까지 마친 그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서 기술 장교로 복무하다 1968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들꽃수목원
특징자연생태박물관, 민물고기학습장, 야생화정원, 열대식물원 등 전시 시설.민물고기학습장, 토피어리작업장 등 체험 시설
개장시간오전 9시 반∼오후 6시(하절기)
입장료어린이 4000원, 어른 5000원
연락처031-772-1800

곧바로 도난경보기 제작을 시작했다. 오늘날 무인경비시스템의 시초인 셈.

“먹고살기가 어려웠던 때라 유난히 좀도둑이 많았지. 이걸(도난경보기) 만들었다고 하니까 서울의 내로라하는 기업인이나 정치인 집에서 모두 나를 불렀지.”

정 원장은 1971년 국제전자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후 무전기 사업에 뛰어들어 외국 업체를 제치고 국내 1위 업체로 성장시켰다.

그렇게 30년 동안 무전기 전문가로 살아오다가 200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양평에 자연생태박물관을 세웠다.

그는 “처음에는 직원을 위한 연수원을 지으려고 땅을 구입했었지. 볼거리로 만든 박물관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어”라고 말했다.

○ 적자 계속되지만 가족도 후원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연수원 건립이 어려웠다. 대신 어린이를 위한 자연체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10만 m²의 땅에 꽃과 풀,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했다. 수생식물이 자라는 연못을 만들고 대형 온실에 열대식물을 키웠다. 어린이들이 민물고기를 만져 볼 수 있는 학습장도 마련했다.

2003년 정식 개장 때까지 100억 원 가까운 돈이 들었다. 관리에 워낙 많은 돈이 들어 아직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돈 생각 했으면 아예 시작조차 못했지. 그래도 어디 버린 건 아니지. 여기 꽃이며 나무가 가득하잖아?”

처음에 반대하던 가족도 이제는 틈만 나면 수목원에 올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정 원장도 이틀에 한 번씩 반드시 이곳을 찾는다. 직접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고 어린이 관람객을 안내한다.

“요즘 아이들이 어디서 흙이며 곤충을 만져 보겠어. 그저 여기 와서 신나게 놀고 배우고 가면 그걸로 만족해.”

○ 자연을 보고 듣고 만지는 공간으로

들꽃수목원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바로 자연생태박물관. 쉬리, 산천어, 버들붕어 등 50여 종의 토종 민물고기를 전시한다.

어른 손가락 2개 정도 굵기의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꿈틀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을이 오면 장수풍뎅이 수십 마리가 날아다니는 장관이 연출된다.

관람객이 모이면 민물고기 학습장에 미꾸라지를 풀어 놓는다. 어린이는 직접 들어가서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장미정원과 야생화정원에는 사계절 돌아가며 갖가지 꽃이 핀다. 허브쿠키, 토피어리를 만드는 체험장도 운영 중이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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