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재승]0교시수업의 생리학

  • 입력 2008년 5월 7일 02시 54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0교시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야자시간)이 자율화되었다. 지나친 경쟁과 대학입시 지상주의로 인해 학생들의 건강과 인권을 해칠 우려가 있어 국가적 차원에서 규제해온 0교시와 야자시간을 더는 국가가 신경 쓰지 않기로 선언한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경쟁주의가 팽배한 ‘다윈의 생태계’로 들어서게 됐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 학생들은 집단적 수면장애를 앓게 생겼다. 지금도 이미 청소년 적정수면시간인 9시간은커녕 7시간도 제대로 못 잔 채 등교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1시간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판이다.

아침마다 자녀를 깨우느라 전쟁을 치러야 했던 부모들은 이제 더 이른 시간에 힘겨운 전쟁을 치러야 할 텐데, 사실 그것은 우리 애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건강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면시간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은 사춘기가 되면 대개 오후 11시 전후에 분비되기 시작해 오전 9시 넘게까지 남아 있다. 이런 경향은 사춘기가 진행될수록, 그리고 중학교 때보다는 고등학교 시절에 더욱 강해진다.

이렇듯 10대들이 아침 늦게까지 자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약 우리 애가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침운동을 한 후, 신문을 보며 아침밥을 빨리 달라고 부모를 깨우거든 가까운 병원에 데리고 가시라. 나이 예순의 몸을 가졌을지 모른다.

생리활동 거스른 수업은 역효과

이제 0교시가 시작돼 오전 7시에 학교에 가야 할 학생들은 2교시가 되기 전에 점심 도시락을 먹을 것이고, 3교시가 끝난 후에는 매점으로 달려갈 것이다. 0교시 수업의 부활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생체리듬을 망가뜨리고 비만과 과체중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

브라운대 수면과학자 메리 캐스케이던 박사에 따르면, 10대들이 풀이 죽어 있거나 예민하거나 퉁명스러워 보인다면, 수면량이 충분한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권고한다. 가로등이 꺼지기도 전에 일어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슬픔이나 좌절감 같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신경질적인 반응도 심해져서 교실 내 폭력이 증가하기도 한다.

학교들이 0교시라는 ‘수학적으로 매우 해괴한’ 개념을 만들어낸 이유는 아마도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겠지만, 역설적이게도 높은 학업성취를 위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아침잠이다.

밤을 새워 공부한 후 시험을 보는 것보다 3시간이라도 잠을 자고나서 시험을 치를 때 더 높은 점수를 올린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뇌는 잠자기 전에 배운 것들 중에서 중요한 것은 장기기억으로 넘기고 쓸데없는 정보는 깨끗이 지워 새로운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재충전한다. 마치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칠판을 지우면서 중요한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는 과정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 내 아이가 열심히 자고 있다면 세수를 하라고 야단치지 말고 이렇게 주문을 외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으시라. ‘지금 우리 애가 전날 배운 것을 열심히 장기기억으로 넘기고 있구나. 생체수면학원에서 과외를 받고 있구나’라고.

몇 년 전,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와 뉴욕 시 북쪽에 위치한 카토나 등 여러 지역에서 학부모들이 수면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우리 아이들에게 아침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달라”며 학교당국을 설득한 적이 있다. 학교는 이를 받아들여 수업시간을 30분 늦췄는데 덕분에 수업 분위기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수학능력평가(SAT) 점수도 올라갔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밥보다 잠이며, 학원보다 잠이다.

美‘충분한 수면=학력 향상’ 입증

안타까운 것은 ‘0교시 수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분들이 대부분 오전 4시면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50, 60대 어른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청소년들이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느라 맑은 새벽 공기를 마시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쓰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실만은 기억해 주시라. 자신들도 청소년 때엔 달콤한 잠이 부족해 아침마다 부모와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을.

잠을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들이 ‘0교시 수업’에 대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너무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청소년들은 결코 학교를 즐겁게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정재승 객원 논설위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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