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월드 대신 한국에 올 돈 모았죠”

  • 입력 2008년 5월 5일 02시 59분


“우리는 한국계 미국인 가정”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포츠머스 시 애비스쿨의 인문학 교사인 블레이크 빌링스 씨와 심리상담사인 부인 질리언 팬턴 씨는 1997년부터 팬턴 군 등 한국인 4명을 차례로 입양했다. 왼쪽부터 빌링스 씨, 루시아 양, 팬턴 군, 트리사 양, 존 군, 질리언 씨. 김재명  기자
“우리는 한국계 미국인 가정”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포츠머스 시 애비스쿨의 인문학 교사인 블레이크 빌링스 씨와 심리상담사인 부인 질리언 팬턴 씨는 1997년부터 팬턴 군 등 한국인 4명을 차례로 입양했다. 왼쪽부터 빌링스 씨, 루시아 양, 팬턴 군, 트리사 양, 존 군, 질리언 씨. 김재명 기자
“태어난 나라의 살아있는 역사-문화 체험

아이들이 자부심 갖고 살게 해주고 싶어”

“아빠, 여기는 어디예요?”(팬턴 빌링스)

“이곳은 여의도란다. 큰 공원이 있고 미국 대도시의 다운타운들처럼 한국의 큰 회사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야.”(블레이크 빌링스)

3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앞. 호기심 많은 한국인 아들과 자상한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질문과 대답이 꼬리를 물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포츠머스 시의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 애비스쿨의 인문학 교사인 블레이크 빌링스(49) 씨와 심리상담사인 부인 질리언 팬턴(44) 씨는 1997년 팬턴(한성민·11) 군을 입양했다. 이후 1999년 존(모형식·10) 군, 2000년 루시아(김은희·8) 양, 2003년 트리사(안희진·6) 양 등 한국 아이들을 차례로 입양했다.

결혼할 때부터 외국 아이를 입양할 마음이었던 빌링스 씨 부부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 배경과 취지에 좋은 인상을 받아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3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가족여행을 온 빌링스 씨 가족은 스스로를 ‘한국계 미국인 가정(Korean American Family)’이라고 부를 만큼 한국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 팬턴 씨는 “우리 집은 디즈니월드에 갈 돈 대신 한국에 올 돈을 모은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교육을 시키는 데 적극적이다. 미국에서도 추석과 설날 등의 한국 명절을 지내는 것은 물론 떡볶이와 잡채 같은 한국음식까지 직접 요리해 아이들에게 준다.

아이들의 한국 이름도 지우지 않았다. 학교 출석부 등에 적히는 팬턴 군의 공식 이름은 ‘팬턴 한성민 빌링스’다.

빌링스 씨는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름이 가장 긴 아이”라며 “집에서도 아이들을 부를 때 미국 이름과 한국 이름 두 개를 모두 쓴다”고 웃었다.

인문학 교사인 아버지를 둔 가족답게 빌링스 씨 가족은 이번 여행을 통해 다양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서울의 고궁, 남산타워, 여의도공원, 파주 헤이리 마을, 부산 범어사 등을 둘러봤고 지하철도 자주 타봤다. ‘부처님 오신 날’ 기념 제등행렬도 지켜봤다.

빌링스 씨는 “아이들이 한국 사회와 문화를 살아 있는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며 “특히 지하철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접촉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빌링스 씨 부부의 정성 어린 노력 덕분에 아이들도 한국에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팬턴 군과 루시아 양은 한국의 지하철과 음식에 관심이 많아 학교에서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발표를 할 때도 한국의 지하철과 음식을 주제로 삼았다.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교육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빌링스 씨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빌링스 씨 부부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글로벌화할 때 한국인이며 동시에 미국인인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질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두 개의 정체성을 조화시켜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며 5일이 ‘어린이날’인 것도 아는 팬턴 씨는 “한국의 출산율은 낮아지고 입양률은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둘 다 많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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